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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플로리안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5. 10. 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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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잔의 에스프레소 가격으로 8,500원을 지불한 적이 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8,000원을 추가 지불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커피 한 잔(그것도 에스프레소)을 마시기 위해 16,500원을 지불한 셈이었다. 내 생에 가장 비싼 커피를 마신 날이었다.

 

유명인이 많이 찾아갔다는 카페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문학가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카페였다. 괴테, 바이런, 찰스 디킨스, 헤밍웨이, 상드, 샤토 브리앙, 마르셸 프루스트... 옛 문인들이 많이 찾아간 카페였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과거의 기억이고, 지금처럼 카페가 많은 시대에 '누가 와서 마시고 갔던 카페'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특정 인물에 과도하게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이 한 번 사용했던 볼펜이나 그 사람이 한 번 앉았던 의자에도 특별한 감정을 싣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특히 종교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근래에는 대중문화의 팬덤에서 그런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었던 걸까. 무엇보다 '괴테'라는 이름이 마음에 남았다. "그냥 오래된 평범한 카페겠지, 별거 있겠어?"라고 하면서도 펜을 든 나의 손은 묘하게도 그 가게의 위치를 적고 있었다. '괴테가, 그 괴테가 갔었단 말이지...'

 

그 후 이탈리아로 넘어가 베네치아의 듀칼레 궁전을 둘러보고 나서 무작정 걷던 때였다. 아내가 외쳤다. "플로리안이다." 눈앞에 카페 플로리안이 있었다.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세 군데의 유명한 커피숍 중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을 가려고 했는데 그 중 플로리안이 딱 나타난 것이었다. 잠깐 눈짓을 주고 받은 우리는 야외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 앞에선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아코디언의 4중주가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었다. 그렇게 에스프레소 한 잔에 16,500원을 지불하게 되는 역사적인 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공연비로 한 사람당 6유로를 무조건 추가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일어날까 말까 망설였지만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서로를 설득했다.

 

"봐, 이렇게 멋진 날에,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을 배경으로, 이런 아름다운 건물에 둘러싸인 채 4중주를 라이브로 들으며 야외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이 정도 값은 지불할 수 있지 않겠어?"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서 커피와 젤라또가 다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앉아서 산 마르코 광장을 바라보는 동안 어둠이 깔렸고, 대성당과 16세기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에 서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아드리아해의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산 마르코 광장을 조금씩 덮기 시작했고, 그 물에 빛이 반사되어 광장은 더욱더 반짝거렸다.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그런 그들을 축복하듯, 한 사람이 쏘아올린 슈팅라이트의 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다 서서히 내려 앉았다.

 

플로리안이 위치한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2015.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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