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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8. 8.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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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의 발코니 밖에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달아둔 태극기가 하나 걸려있다. 가끔씩 창밖의 이 국기를 바라보다가 기분이 착잡해질 때가 있다. 매해 8월만 되면 광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되는데, 이 광복이라는 단어가 참 허망하게 들리는 것이다. 광복을 맞이한지 이제 70년. 우리는 왜 광복을 이렇게 기념하고 있는가? 선뜻 와닿지가 않는다. 정말로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복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지나간 과거사일 뿐,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이 머리를 스친다. 광복절과 관련한 기사도 14일이 과연 임시 공휴일이 될 것이냐, 혹은 노동자들이 이날 정말로 쉴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광복절에 쉴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중요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는 답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대답은 광복이라는 단어와 선뜻 연결되지가 않는다. 이 대답은 광복이 아니라 휴일이라는 단어와 잘 매치될 따름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광복이 아니라 휴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저 눈앞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한 손으로는 다른 사람과 전투를 벌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평화를 악수를 내미는 불편함처럼. 그렇게 발코니의 저 태극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이 정도면 난 애국자라는 기호를 품은 채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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