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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탄생, 그리고 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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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21일은 음력상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난 고개를 돌려 동쪽 하늘에 뜬 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달은 약간 이지러진 모습을 한 채 지구의 그림자를 완연히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달은 오늘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누군가 창조는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우리가 어머니의 몸에서 빠져나온 순간 "이미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탄생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것의 시작과 끝조차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기에 난 그 무엇이든 여전히 탄생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탄생이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 혹은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잘리는 그 순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여전히 우주를 만들고 있는 중이고 달은 변화하는 중이며 생명은 자라나고 있는 중이고 나는, 인간은 여전히 태어나는(어떤 이들은 '성장하는'이라고 표현하는) 중이었다.

성운은 가스를 머금고 그곳에서의 기이한 힘은 가스의 중심부를 뭉치게 만들어 별들을 탄생시킨다. 우리는 그 가스층 안에서 별이 새 생명을 시작함을 안다. 하지만 위와 마찬가지 이유로 그 어느 누구도 "이제 별이 탄생하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별이 형성되고 있음만을, 그것이 진행되고 있음만을 우리는 알 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 명확한 시작과 끝이란 없다.

난 때때로 추운 밤,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커피와 코코아로 몸을 녹여가며 천문대 옥상에서 밤새도록 유성을 바라보는 것을 꿈꾼다. 그것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우주 잔해들이 지구의 대기층에 부딪혀 산화하는 시간대에 대한 자료 수집, 늦은 시간 잠도 잊은 채 천문대에 올라가는 열의, 밤의 입김과 책을 비추는 감홍색 손전등의 불빛, 빛나는 별빛에 대한 몽환적 상상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떤 소리가 들려옴을 알 수 있다. 그건 유성이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소리이고 지구가 섬우주의 바다를 가르는 소리이며 인간의 내면이 태어나는 소리이다.

빛은 과거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우주를 볼 때마다 난 과거를 보게된다. 과거는 추억이며 생식세포 분열 이전의 자양분을 주었던 근원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탄생이다. 신비와 환상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도 시작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우주의 구성원인 달을 보면 마찬가지 생각이 든다. 비록 무척 미묘한 차이지만 달의 빛도 과거의 빛이며 달의 위상 변화도 지구의 그림자, 지구의 뒷모습으로 인한 결과다. 많은 것들이 과거로부터 오고 그 과거는 그리움을 전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고대인들의 달에 대한 염원─여성의 월경과 달력의 열두 달에 남아있는 흔적처럼 미지의 자연에 대한 경이를 드러낸다.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겸손해진다. 그래서 다시 한번, 태어난다. 탄생은 계속 된다.

하늘이 맑다. 내일 하루도 많은 이들의 소원이 달에 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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