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 콜라에 얼음을 넣으면 왜 기포가 발생하느냐고. 차가운 얼음이 콜라에 들어가면 물의 온도가 낮아져 용해도는 높아져야 하는데 왜 기포가 발생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 그것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또다시, 마치 처음 물어보는 것처럼 그것을 다시 물었을 때─나는 콜라와 얼음이 아닌 우리 사이의 용해도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우린 서로에게 얼마나 용해되었을까? 무엇이 우리의 용해도를 높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포화상태일까, 아니면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녹여낼 수 있을까? 그는 금세 커피를 다 마셨다. "난 원래 빨리 마셔." 커피의 겉포장지를 뜯으며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도 내 컵에 반 정도 남아있던 커피를 얼른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우린 서로 친하지 않았으니까." 문득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고 나서 빈 컵을 들여다 본 그 순간, 나는 우리의 용해도가 여전히 0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졌다. 난 다시금 밤이 좋아졌다. 밤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힘들게 만난 그에게 난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오늘은 꽤 오랫동안 눈이 내렸고 쌀쌀했기에 문득 그 책이 생각났던 것이다. 책 속 그들의 슬픈 이야기마저 오버랩되면서, 난 그 책을 그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다 읽은 뒤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돌려받고 싶지 않았다. 돌려받는다면 그것이 다른 방식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마도 난 그 책을 다시 사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와 그 책을 공유하게 될 수 있길 바라고 있으면서도. 그건 내가 항상 응답을 기다리던 휴대전화와 같다. 때때로 날 구속하는, 구속을 느끼게 해주는 그 휴대전화.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 구속에서도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때론, 아니 궁극적으론 오로지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전부일 것처럼. 그렇게, 언제 올지 모를 답변을 그리워하며 우체통에 편지를 넣던 나는 잊혀져 버렸다.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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