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인생에도 가정과 후회는 있다. 가령 그때 그걸 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혹은 헤어졌더라면 하는. 살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받는 그런 날, 사람들은 작은 영화관에서 홀로 영화를 보거나 조용히 걷거나 커피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는다. 어떤 이들은 술을 마시기도 할 것이다.
한때 나는 우울한 날씨를 좋아했다. 곧 비가 내를 것 같은 그런 날씨. 그때 난 구름 한점 없이 해만 높이 떠있는 날을 꺼려하곤 했었다. 태양 아래 서 있으면 사람들 앞에 내가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았고, 난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 건물의 통로를 이용해 걷곤 했다. 난 차가운 회색빛 벽과 침침한 형광등 불빛을 좋아했다. 그때의 난 새벽에 걷는 걸 좋아했고 락, 하드코어 밴드, 유명한 드러머들의 이름을 스승 모시듯 외우고 다녔으며 화창한 날이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지금 그런 것들은 없다. 스티브 갓이나 데이브 위클과 같은 이름을 우연히 듣게 되면 '아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라며 과거를 회상하다 말곤 했다. 요즘은 오히려 왜 그때 내가 그 음악을, 그 사람들을 그렇게 좋아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누군가는 그걸 잃어버린 하루라고 표현을 했다. 친숙했던 거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변화의 경계.
예전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콜트레인을 아세요?'하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70년대의 낭만이었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때때로 내 시대의 낭만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곤 했다. 시대의 낭만이라는 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모두가 알고 모두가 느낄 수 있었으며 또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었던 것. 나에게 그런 것들이 있었던가? 내가 모두와 공유할 수 있었던. 난 생각했다.
과거, 사람들은 사방이 캄캄해지면 재즈 바에 들어가 술을 한잔 씩 하곤 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카운터 앞 자리에 앉은 뒤 버번콕을 시키면 연륜있어 보이는 바텐더가 다가와 '듣고 싶은 곡이라도 있으십니까?' 하고 물어보고, 그럼 사람들은 잠시 생각한 후 콜트레인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와 같은 음악을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얼마 뒤 바텐더는 레코드장에서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 놓을 것이고 사람들은 잔을 입가로 가져갈 것이다. 얼음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가볍게 즐기며. 주변은 조용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나긋하다.
몇 주 전 내가 들어간 바에선 짙은 화장을 한 어린 여자가 술을 꺼내왔다. 컴퓨터의 MP3 플레이어에선 반복적인 음악이 흘러나왔고 손님들은 시끄러웠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며, 어쩌면 난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요즘엔 사회엔 낭만이 없어'라고 말하는 걸 이해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나에게만 온 것이었을까? 70년대 콜트레인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콜트레인을 좋아하고 있을까? 예전에 재즈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버번콕을 즐겨마시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걸 즐겨마시고 있을까? 소를 몰던 서부의 카우보이들은 화톳불 대신 자리한 유리 램프를 보며 낭만이 사라졌다 말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팝송을 듣고 맥주를 마시며 추억처럼 칵테일을 회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추억이란 대개 그들이 기억하는, 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개개인이 그때 얼마나 성공했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이 기억하는 것이 여전히 자기 주변에 머물길 원하고, 자신들이 기억하는 것들 역시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불완전함을 느낄 때, 그때 사람들은 자기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세월은 흘렀고, 기억하던 것들은 없어졌으며, 꿈꾸던 것들은 사라졌고, 추억만이 남았다.
사실 난 사회나 시대의 낭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며칠 전 오랜만에 찾아간 홍대 라이브 클럽의 음악들은 흥겹고 즐거웠지만 난 그 이상의 어떤 감각, 감정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 감정은 과거 내가 즐겼고, 지금의 내가 거의 완전히 잊어버린 그 시절 음악에 대한 어떤 감정과 별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하고자 했던,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 시대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난 항상 그 다음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지만 그 다음은?' 난 항상 그 다음을 생각했기에 어려웠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길을 잃지는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더 큰 환희가 거기에, 그 다음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 그럴 거라고 믿었다.
보르헤스의 '칼잡이들의 이야기'와 사마천의 '자객열전'에서 몇 천 년을 뛰어넘는 유사성을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과학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건 놔두어도 될 일들이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할, 하게 될 일들. 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나만이 해야되는 일, 다른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일. 그것을 상상하는 일이 나를 연주하고, 뛰고, 쓰게 만들었다.
누구의 인생에도 가정과 후회는 있다. 그날의 우울과 커피와 날씨를 결정짓게하는 그때가 있다. 잿빛 하늘, 안개 낀 가스등, 웅덩이진 거리, 데워진 커피잔. 이들을 내가 느꼈던 건, 느끼려고 했던 건 바로 그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행위는 그것의 부재에서 왔다. 그래서 오로지 그것만이 나를 가정하고 후회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나를 가치있게,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아있을 수 있게 만든다.
다른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없어지고 변해도 상관없었다. 난 결국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임을 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영원한 것은 그것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그래서 영원히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더라도. 사람들이 회상하는 것처럼, 이유도 모른 채 슬퍼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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