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로등 없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데 문득 길 맞은 편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작고, 끊어지는 듯한 야옹, 야옹 소리.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웬 얼룰덜룩한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날 보며 앉아 있었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투박한 빛깔의 털과 흑백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딱 들고양이었다. 난 얘가 왜 날 부르나 싶어 멈춰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고양이는 날 바라보며 간헐적인 울음을 계속했다. 그래서 난 가방을 살며시 내려놓고 쭈그려 앉았다. "이리와, 이리와." 난 손을 살짝 뻗어 고양이에게 말했다.
잠깐 주저하는 빛을 보이던 고양이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다가 이내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그때의 기분은 마치 자연이 내 품에 안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곤 내 손을 이리저리 살피다 핥기 시작했다. 난 다른 한 손을 뻗어 그 고양이의 등과 배를 살며서 어루만졌다. 고양이는 꼬리를 수직으로 바짝 세운 채 자신의 몸을 내 손과 팔, 다리에 부볐다. 그러다 다시 물기 없는 작은 혀로 내 손을 핥았다. 내 손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며 냄새 맡다가 다시 핥기를 반복하던 그 고양이는 무슨 심술이라도 났는지 내 엄지 손가락 밑부분을 살짝 깨물었다. 난 나도 모르게 '아야' 하고 소리를 냈다. "아프잖아." 난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로 고양이에게 말했다(물론 고양이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그 고양이는 어디가 가렵기라도 했는지 보도블럭에 몸을 살살 비벼대며 짠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러다 다시 내게 다가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내 주변을 살살 맴도는 것이다. 그런 고양이를 지켜보다가 난 내 두 손을 이용해 그를 살짝 들어올려 보았다. 그러자 고양이는 '엥엥'거리는 소리를 냈다.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난 다시 그를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배가 고픈 모양이야.' 난 그를 살펴보다 곧 그렇게 생각했다. 들고양이나 버려진 개들을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었다. '아, 배가 고픈 모양이야.' 난 어떻게 하면 생선을, 아니 하다못해 과자나 아이스크림이라도 구할 수 없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도통 떠오르지가 않았다. 난 왠지 모르게 '이 고양이에게 먹을 걸 구해다 줘야겠다'라는 사명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그 고양이를 살며시 쓰다듬다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을 거 가지고 올게." 난 고양이에게 말했다. 그 고양이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내 얼굴만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어디 가지말고 거기 있어. 알았지? 나 어디 가버리는 거 아니야." 난 뒷걸음질치며 고양이에게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꼼짝않고 날 바라보고만 있었다.
방에 들어간 나는 여차여차해서 작은 먹을 것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이거라도 어디냐, 하는 생각에 난 그를 들고 그 고양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그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주변을 한참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바보같이 그새를 못 참고 가버리냐.' 그렇게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저 밑에 그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약간 가파른 등선을 따라 약 10미터 정도 아래에 그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난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함부로 다가가 놀라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난 자리에 앉아 그 고양이가 나에게 반응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날 바라보기만 할 뿐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난 내가 들고 온 음식을 연방 흔들어댔지만 그 고양이는 그것에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약 10여 분. 이윽고 고양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 아래 언덕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처음에 날 부른 건 너였잖아.' 난 내가 가져온 음식을 그 고양이가 떠나버린 자리 근처에 던져 놓으며 생각했다. '그래놓곤 가버리다니. 그래, 어쩌면 내가 가져온 음식이 영 신통치 않았었나 보다.' 난 쓸쓸히 돌아서며 자기 위로를 행했다.
그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내 손으로 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충만과 공[空]이 서로 자리를 바꿔 들어앉는다.
어쩌면 그 고양이가 원한 건 먹을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고양이가 원한 것은 인간의 단순한 애정이었을까? 마치 자신이 상처받은 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내가 일어서서 떠나려던 순간 그 고양이는 인간은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배신감에 빠져버린 것일까?
그 고양이가 어렸던 날에 바라보았던, 어둠 속에 몸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절의 밝은 빛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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