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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레드박스, 2011)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1. 10. 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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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느꼈던가? 그것은 그야말로 이 책의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지금까지 말하지 못하고 숨겨왔던 어떤 비밀스러운 내용에 대한 진술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그 진술이 다름 아닌 자신의 소설쓰기에 대한 방식이라는 것, 즉 자신이 소설의 배경이나 인물의 이름을 구상할 때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고백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난 이 책에 실망하게되었다. 보르헤스나 마르케스가 글쓰기 기법에 관한 책을 냈더라 할지라도---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기 때문에 읽어볼 수는 있어도---읽은 후 다소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 글쓰는 방식, 기법은 오로지 글쓴이의 특징, 특색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작가는 말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글쓰기에 관한 거의 대부분의 기법을 터득했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글쓰기 기술이라는 것은 기법의 연구나 공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런 기술에 대한 책은 그 작가나 그 작가가 쓴 글을 연구하는 연구원, 교수들 또는 그 작가의 열혈 팬들이나 읽을 책들이었다. 난 움베르토 에코도 그 사실을 잘 알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는 이런 책을 쓴 것일까?

그런데 위 생각은 내가 이 책을 두 번째 장까지 훑어보고 난 뒤에 한 것이었다. 창조적인 행위(이 책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방법론적 기술이란 내겐 마치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에게 짜여진 틀을 알려주고는 '이렇게 그려라. 이게 정답이다'와 같은, 오히려 창조성을 방해하는 행위였고 그래서 그런 의도가 얼핏 느껴지자마자 난 저자의 의도를 확신해버린 것이었다. 그가 책에서 예시한 이론을 따르면 난 이 책의 '경험적 독자'가 되었던 셈이다. 책의 제목인 '고백' 그리고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그의 몇 가지 이야기만을 가지고 이 책을 내 사적인 생각에 맞게 정의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정확히 얘기하자면 세 번째 장을 읽다가 다시 첫 번째 장부터 읽기로 결심하게 되었을 때---난 움베르토의 고백이 자신의 소설쓰기의 방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그것이 자신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쓰라는 것도, 써야한다는 것도, 그것이 올바르다는 주장도 아니었다. 그저 한 소설가---스스로 말하길 아마추어 소설가---가 이런 식으로 글을 구상하고 썼다는 그런 고백이었다. 그의 현재 나이를 비추어 보았을 때 그것은 어쩌면 회상의 한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책을 읽으며 이중코드라거나 토포스라는 용어에 못마땅함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정말 그저 단순히, 읽고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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