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이랄까, 이 책을 읽고난 직후의 느낌을 따로 워드에 적어놓은 게 있었다. 애초에 난 그 내용을 여기에 붙여넣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랄까, 세계사, 그중에서도 현대의 이슈를 위주로 쓴 세계사 책을 보면서 말할 그 느낌이라는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유해폐기물 문제, 그 폐기물들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집중 문제, 가속화되는 건강 불평등, 다국적기업의 인권과 노동권 침해, 몇몇 선진국의 강요된 민주주의 등등... 내가 쓴 그 독후감이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식의, 다소 계몽섞인 시답잖은 내용이었다.
이 책을 산 것은 몇 주 전의 일이었다. 그 후 몇 번 훑어본 뒤로 이 책은 키보드 옆에 한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책장에 꽂아두지 않고 굳이 눈에 잘 띄도록 키보드 옆에 둔 것은 이 책을 빠른 시일 내에 정독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는데, 어젯밤 새벽에 '시리아나'라는 영화를 본 것을 계기로 다시 이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중동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영화를 보고나니 문득 이 르몽드 세계사에서 다루던 중동의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몸에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다리 근육이 이상하게 저려왔고 그래서 그런지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아마 원인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내가 읽는 이러한 내용이 실은 세계사의 부정적인 점만 강조한 지엽적인 내용에 불과할지도 모르며,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그런 부정적인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으므로 이 책의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가정해도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오히려 균형을 이루는 면이 있을 것이다---나로서는 단순히 읽고마는 수준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몸과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다.
세계적 이슈와 쟁점들에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고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심지어 국내 정치나 이슈도 그럴진대 그 무대를 세계로 옮겨가면 그 거리감은 도저히 느낄 수가 없는 것이 된다. 그것은 자기 몸하나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는 노숙자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나 지역차와 세대차로 구별되는 정치적 색에 대해 TV와 신문에서 들은 바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순진하여 안타까워보이는 것이다. 자신은 무언가를 알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그 내용이라는 것이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인데다가 해결책이 없는, 쉽게 얘기해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것에 답답함이 자리하는 것이다. 이 책은 나의 그런 한계를 다시금 드러낸 셈이다.
나에게 이 세계사책은 마치 과학책의 그것처럼 단순 암기식의 지식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끝없이 그런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심지어 얼마 뒤면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아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굶어죽고 내전으로 죽고 유전자변형 음식과 물부족의 위협에 시달리며 빈부격차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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