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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문학동네, 201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2. 8. 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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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부분이 쉽게 읽히지 않던 책이었다. 챕터 1과, 2를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지 쉽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책터 3에서 '나'라는 존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가? '나'가 주인공인가? '나'는 이름이 뭐지? 왜 이제야 '나'가 등장하는 거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챕터 1, 2, 3에서 '베니'와 '사샤'라는 사람만 공통적으로 등장할 뿐 (물론 '루'와 같이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인물들도 있긴 했지만)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호하게 느껴지던 이야기는 챕터 6에 이르자 명확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건 쉽게 생각해 단편들의 모음이었고, 그 단편들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뒤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구성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이란---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사샤에게 중심을 맞춰본다면---인생에는 쉼표가 있고, (사람마다 그 쉼표의 길이는 다르겠지만) 그 쉼표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쓸데없이 소모해버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며, 그 쉼표는 끝이 날 것 같지 않지만 결국은 끝이 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 쉼표가 길든 짧든 간에)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든 철이 들어가는 과정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나는 그것이 시간의 비가역성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땐 미처 몰랐던 사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것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알렉스는 눈을 감고귀 기울였다. 상점 앞문이 내려가는 소리. 컹컹 개 짖는 소리. 트럭들이 우우 하며 다리 위를 달리는 소리. 그의 귓속을 채우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밤. 그리고 그 울림. 언제나 들리던 그 소리는 결국 메아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462쪽)

그들은 젊은 날의 사샤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는다. 그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발굽 소리가 복도 저 편에서 들리기 시작하면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 소리의 주인공이 정말 사샤이길 바라면서. 나는 그때 알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바라보던 시간의 이미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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