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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1. 장정일 지음 (범우사, 2005)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2. 10. 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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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독후감을 쓸지 궁금해서 샀던 책이다. 처음 읽을 당시 어려웠던 점은, 그가 써놓은 책들 태반이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라 그의 독후감이 썩 와닿지 않았다는 거였다. 결국 내가 읽어본 책이 있나 훑어보곤 금방 덮어버렸었다. 그게 5~6년 전의 일이다.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몇 가지 새로운 점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에 대한 그의 독후감은 여전히-특히 짧은 글들일수록-낯설게 느껴졌지만 그가 길게 서술해 놓은 글들은 그 자체로 읽기의 감흥을 주고 있었다. 특히 23쪽부터 시작되는 '하루키에 관한 짧은 글'을 읽고 나자, 전에 내가 얼마나 이 책을 건성으로 읽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을 보호해줄 가족이 전무하다거나 사랑하는 여인이 이유도 없이 자살을 했다는 등의 강렬한 상실감이 하루키의 소설을 지배하는 주조음이다. (...) 개인적이고 통속적인 상실감과 허물을 사회적 배경이나 근원과 연관하여 해석되도록 유인할 줄 아는 데에 하루키의 탁월한 작가적 능력이 배어 있다. (...) 즉 하루키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감상적인 허무만을 읽는 독자는 그를 통속작가로 경멸하기 쉽고, 주인공의 상실감을 추동하는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고민에 초점을 맞추는 독자는 그를 1급 작가로 추어올릴 것이다.
(...)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자신의 불구성과 결락을 채우려들지 않으며, 귀거래사형의 인정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상실감을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그레이트 개츠비>를 세번 읽은 작자라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상실의 시대>)'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으로 도시에서의 불안감과 청춘의 허기를 달래는데, 바로 이 점이 가장 하루키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시적익 감각적이라고 불리우는 하루키의 소설은 문화적 기호 혹은 문화적 할부의 소비와 연관 깊은 것이기 때문이다.
할부란 무엇인가? (...) 이들이 친구가 되는 것은 꼭 이데올로기가 같거나 삶이 지향점이 같아서일 필요가 없다. '나는 비틀즈를 좋아한다. 너도 비틀즈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다'라고 말하게 해주는 것이 현대의 할부며 문화적 할부다.
(...)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겪는 허무와 상실의 정체는 여기 있다. (...) 하루키의 주인공은 문화적 기호를 포식하는 것으로 도시적 삶의 불안과 청춘의 허기를 달래지만 할부(기호)가 조작되는 고도자본주의 사회가 그들의 냉소와 허무를 가중한다. 하루키의 '안티모드(반유행)'는 고도자본주의의 조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안쓰러운 몸부림이자, 이미 그것에 침윤된 바 있는 자의 추억이다." (23~25쪽)

이 얼마나 멋진 글인가. 갑자기 하루키의 소설이 다시금 읽어보고 싶어진다. 다른 쪽에도 더 인용하고 싶은 많은 문장들이 있지만 더 적는다면 인용을 넘어서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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