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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0. 11. 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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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사랑, 소망 중 제일은 사랑이니라." 이 문장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인데 그 이유는 언급된 세 단어의 의미의 범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남녀관계에서 "당신을 사랑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혹은 "당신을 믿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는 건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현을 '사랑'하는데 그 이유는 모호한 표현이 우리에게 신비스러운 느낌을 부여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위 단어들이 남녀관계를 떠나 쓰이게 되면 뜻이 조금 더 명료해지는 경향은 있다. 가령,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심지어 신이 없다는 게 증명되어도 그것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그 사람의 과거의 행실이나 현재의 평가를 떠나 그가 내가 생각하는 모습대로 존재해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그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했을지라도 그것에 피치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유사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믿음을 거부하는 것에는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세계가 믿음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가설을 배제하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생명 탄생의 신비, 각 사람마다의 미모의 차이, 수명의 차이, 기본적으로 다른 것들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운명 등등은 오직 '믿음'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사랑은 그 위에 뿌려진 첨가제와 같다. 그리하여,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과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는 놀라운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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