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어제 그 본 영화는 최고였어!"
"B: 최고라고? 저번엔 다른 영화가 인생 최고의 영화라더니?"
위 대화엔 어떤 답답함이 흐른다. 그건 B가 A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순수히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가지고 문장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B는 A가 이렇게 말하길 원할 것이다. "어제 본 그 영화는 정말 최고의 영화 '중에' 하나였어!"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은유를 파악할 줄 아는 힘이 있기 때문에 위에서 A가 말한 '최고'는 과장법의 일종이라는 걸 잘 아는 것이다.
우리는 논리학을 공부할 때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역설을 다룰 때 자주 등장하는 예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에피메니데스는 많이 억울해 보인다. 에피메니데스가 짧은 기간 동안 몇몇 크레타인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가정하자. 그는 울분에 차 (자신이 크레타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소리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이보시오, 그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요. 당신은 크레타인인데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라니, 그럼 당신도 거짓말쟁이고, 결국 당신이 방금 한 말도 거짓말이란 얘기지요. 그럼 당신이 한 말이 거짓이니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얘기고, 그럼 결과적으로 당신의 말이 다시 참이 되니 당신의 말은 역설이요",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는가? 옆에 있던 그 사람은 논리학은 알아도 수사학은 모르는 셈이고, 공부는 많이 했을지 몰라도 가슴은 따뜻하지 않은 셈이다.
대화는 그때의 상황과 분위기로 이해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지 않고 오로지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문장들 사이의 논리성만 가지고 대화를 시도할 때, 우리는 '말꼬리잡기, 말돌리기, 지능적 회피/무시' 같은 대화의 방해요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논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은 밤 뒷골목의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조차 이러한 (이상한) 논리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마도 유머는 그런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해준 한 가지 방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