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격테스트가 있다. 그 테스트에서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싫증을 내며 어떤 것을 할 때 재미를 느낀다고 답변을 한다. 그리고 그 테스트는 그렇게 답변한 사람들을 'ABCD'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일한 질문에 대해 A라고 대답한 사람은 A라고 부르고, B라고 대답한 사람은 B라고 부르기로 한 것과 동일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이러저러한 성향을 지닌 사람을 ABCD라고 부르기로 약속"한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문장은, "성향이 ABCD인 사람은 성격이 이렇다"라는 문장으로 바뀌게 된다. "너 ABCD 유형이야? 그러면 성격이 이렇겠네." 이것은 실험의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놓은 사실상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남의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는 사람을 A라고 부르자고 약속했었는데, 이제 성향이 A인 사람은 운동도 좋아하고 남의 앞에 나서기를 꺼리지 않을 거라는 가정이 실리게 된다. 단순히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것만으로도 그 성격테스트는 예언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이런 유형의 전개는 많은 곳에 퍼져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형태로, 심지어 스스로를 과학적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과학적 실험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비과학적 주장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과학적이라고 믿는 것---성격 테스트의 앞뒤를 바꾼 결과처럼, 이 문장도 그 의미에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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