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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민음사 201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3. 3. 2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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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다루는 대다수 서평뿐만 아니라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작품 해설 역시, 이 책의 주인공인 블로흐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로 그의 실직을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직을 하게 된 주인공의 불안, 더 나아가 실업자가 느끼는 불안. 분명 작가는 블로흐가 실직하는 장면으로 책의 서두를 열고 있다. 그러나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소설에서 블로흐는 많은 것을 암시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간파하여 행동하고자 한다. 즉 그는 현장감독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것을 해고의 표시로 받아들여 일을 그만 두며(9쪽), 어떤 행동이나 문장에서 숨은 뜻을 찾으려고 하고(87쪽), 대상들의 반복이 어떤 의도를 나타낼지도 모른다고 생각(104쪽)한다.

이처럼 암시와 예측으로 이루어진 그의 행위는 소설의 상당 부분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골키퍼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다. 블로흐의 말에 따르면 골키퍼는 키커가 골을 찰 방향을 미리 예측해서 그쪽으로 몸을 날려야만 하는 존재(120쪽)다. 키커가 차는 것을 본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차기 전에 예측하여 움직여야만 하는 존재. 골키퍼에 대한 이런 묘사는 골키퍼가 페널티킥 앞에서 공을 놓칠까 봐 그저 불안에 떠는 존재라는 걸 부각하기보다는, 골키퍼 역시 키커의 어떤 행동을 보며 암시를 찾고 예측을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걸 부각한다. 

과거 유명한 골키퍼였던 블로흐는 축구를 하며 그런 예측을 수없이 했을 것이고, 그런 경험은 축구를 그만두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물들의 존재가 무언가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 강박증은 실직을 겪으며 더욱 심해지게 된다. 그 강박증을 과거의 실패, 즉 골키퍼로서 이런 저런 많은 예측을 했음에도 골을 막기보다는 허용할 수밖에 없었을 그의 과거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페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 공을 찼다."(120쪽) 이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실수로 키커가 골키퍼의 손을 향해 골을 날린 것이다. 그러나 77쪽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을 보면 상황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그 슛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공이 순식간에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걸 붙잡지 못했다."(77쪽) 이 문장은 골키퍼의 손을 향해 날아간 그 공을 골키퍼가 잡지 못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조차 막을 수 없었다.

이런 결과는 그의 불안을 증대시킨다. 복잡한 사회에서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하고 예측을 해보아도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블로흐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실직 때문이라기보다는 암시와 예측의 실패에서 오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예측을 한다. 축구선수일 때는 골문 앞에서 이리저리 뛰면서, 현실에서는 사람들의 손짓 발짓과 눈빛의 의미를 따져보며. 하지만 그 예측은 대부분 다 실패하며 노력을 했다는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그런 암시와 예측의 실패는 그를 살인이라는 행동으로까지 몰고간다. 직장이 있다는 사실은 그런 불안 상태를 없애준 게 아니라 잠시 감춰줄 뿐이다. 분명 골대 앞의 골키퍼는 실직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골을 먹은 것 같은, 이미 실직자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키커가 공을 들고 골문 앞에 서고, 우리는 골키퍼가 되어 그 앞에 선다. 그러나, 키커가 슛을 날리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그 슛을 막지 못할 거라는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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