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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2010)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3. 3. 2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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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산책을 하러 집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다소 차분하고 느리게 진행된다. 처음 읽을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고 글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아마 딴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읽고 난 다음에 다시 처음부터 읽자 그제서야 글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산책을 하며 그제서야 자기만의 세상에서 벗어난다. 다른 사람과 처음으로 말도 하고, 쌓여있던 편지들에게도 눈길을 던지며, 그동안 보지 않았던 주변의 풍경들 하나하나에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그때에도 그 풍경들은---작가라는 그의 직업 때문에---작품의 소재들이라는 꼬리표를 떼지는 못하지만. 밤이 되어 집에 되돌아온 그는 침대에 누워 그가 산책을 했던 오후의 풍경들을 회상한다.

독자가 아니라 스스스로를 위해서 이런 글이 써보고 싶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작가)을 위한 글. 책의 첫 페이지에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인 타소의 삶을 다룬 괴테의 희곡, "토르콰토 타소"의 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는데("모두가 있는 곳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괜한 인용은 아닐 것이다. 즉,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작가로서 가지게 되는 삶의 특이성(모두가 있는 것에서 아무것도 아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책의 화자)가 글쓰기를 마친 후 산책을 나서며 시작하는 이 글은, 작가에게 산책이란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보려고 하고 있다. 작가에게는 산책이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라 어떤 의식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작가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을 감정에 자신을 이입하지 않는다면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적인 부분이 많고, 괴이쩍게 그려진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묘사된 작가는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다. 그는 불안과 강박에 떨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가 구도자의 길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얻어진 병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때로는 성인이나 예언자의 모습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모습이 작가라는 사람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모습으로서(천재들과 천식의 상관관계처럼) 상상되기를 희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는 '그'라는 작가가 바로 페터 한트케 그 자신을 닮아 있을 거라는 상상을 쉽게 거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아마, 그였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란 무엇인가? 난 여전히 "작가로서의 나"와 "나로서의 작가"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어떻게 다른 건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더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책의 주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작가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온종일 혼자 집에 있었던 작가는 저녁이 되서야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도 하고 사람들도 만난다. 그 산책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낀 뒤 집에 돌아온 작가는 침대에 누운 채 산책 중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생각나는 것은 "카솀메의 커튼 틈새로 흔들리는 가지들과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 채 복서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그 앞을 맴도는 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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