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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사실, 그리고 커피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3. 2. 4.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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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책에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쉽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 천성 때문에 불쾌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준만이라는 꽤 유명한 교수가 지은 책(한국 근대사 산책3, 인물과사상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공식 문헌에 나타난 기록상으론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맛보았다."(201쪽) 저자가 독자에게 사실과 믿음을 전달하려 했다면 그 '공식 문헌'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를 기술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문장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가 다른 사람이 한 말이나 글을 검증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준만 교수의 언급과는 반대되는 다음의 문장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고종이 아관파천 때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아관파천 이전에 이미 궁중에서 커피가 음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담은 문헌 기록이 존재한다. 1884년부터 3년간 어의로 지낸 알렌은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궁중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는 동안 궁중의 시종들은 거절하는 데도 불구하고 잎담배와 샴페인, 사탕과 과자를 끝까지 후하게 권했다(중략). 후에 그들은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 품목에 홍차와 커피를 추가했다.' H. N. Allen [Things Korean], (1908) p.195.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에서 재인용"

적어도 위 설명엔 출처가 나와 있다. 알렌의 기록을 완전히 신용할 수는 없겠지만, 추론의 근거는 나와있다. 따라서 세간의 책과 신문과 방송매체를 통해 아주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 즉 고종이 한국인 처음으로 커피를 맛보았다거나 아관파천 때 처음 맛보았다는 흔한 믿음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의 저자는 덕수궁의 정관헌이 (각종 신문, 덕수궁 관리사무소 안내판 등이 말하고 있는 대로) 고종의 커피숍이라거나 차와 커피를 즐겨마시던 장소라는 설명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정작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그 어떤 문헌에도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관헌을 고종의 커피숍이라고 명명해놓은 수많은 기록들을 살펴보아도 출처를 명기해 놓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

'한국 커피사는 허구의 향연으로 가득 차' 있다고 위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맹신도 그런 결과에 한몫 했을 것이다.

--- 책과 신문이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의 입은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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