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일부러 찾아보고 있는 소설가가 김연수이다. 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권지예의 "뱀장어 스튜"를 읽을 때만 해도 난 그 책에 우수작으로 수록되어 있던 김연수의 "첫사랑"을 그렇게 주의 깊게 읽지 않았었다. 그건 2007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우수상으로 수록되어 있던 "내겐 휴가가 필요해"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난 대상 수상인 전혜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나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정도를 유심히 읽었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제서야 난 김연수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내가 대상 수상자들의 글과 그 아우라에 연연했던 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뒤로, 구할 길이 없던 그의 장편 소설을 제외한 몇 편의 소설집을 도서관에서 빌려보았고, 몇 번의 갸웃거림과 몇 번의 끄덕임 끝에 이제 그의 이름과 소설이 나에게 특별한 위치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 느낌은 그의 다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와 비슷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길게 풀어쓰는 일은 까치를 두고 '날개 끝을 제외하고 온몸이 까만 산새'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같은 책 286쪽)라고 말하는 그의 성격이 나타내듯, 쉽게 풀어쓸 수 있는 말조차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한 단어로 표현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 때문에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글을 읽기가 어려웠는데, 그의 그런 방식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달구치다, 시부저기, 뇌하다, 게정거리다, 중중거리다, 와뜰, 추렴하다, 저퀴, 허찐거리다, 지뻑대다, 짜글거리다, 설보다, 우련하다, 조리치다, 잦추다, 메떨어지다, 알찐거리다' 같은 표현들이 문장에 종종 등장했는데, 난 성격상 이들을 사전에서 하나하나 찾아보지 않고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발행년도를 찾아보니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는 2002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2005년 발행이었다. 2009년 발행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는 그런 식의 표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글을 일부러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2009년에 보였던 그의 변화-변화가 맞다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그의 그런 표현법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표현을 접하는 것은 어쨌거나 도움이 된다. 이 소설책의 배경이 1970년대 정도라고 하니 약간 예스러운 그 표현법들은, 단순히 문장의 효율 때문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을 상기시키기 위해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느낀 이번 소설집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를,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역감정, 군사정권, 폐쇄적인 지역공동체, 학원폭력. 그런 문제들이 얽혀 있는 곳을 배경으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그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지 못한 채 끌려다닌다. 그런 배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채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려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인물들은 괴짜처럼 그려지거나 이런저런 오해 속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모호하고 막연한 아픔 속에서 걷기를 잠시 멈추게 된다. 아픔의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그의 수법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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