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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201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3. 6. 1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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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형식이 아닌 대화체 위주의, 묘사가 거의 배제된 소설. 철학 관련 아포리즘을 적절히 사용하여 무게를 싣는다. 이런 형태의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우리나라 소설가로 본다면 마치 김영하 씨나 김경욱 씨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 영화로는 파이트 클럽이 떠올랐다. 조금은 기상천외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발상이 아멜리 노통브의 힘인 것 같다. 어느 특정한 날, 달력을 보고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20년 전의 기억을 갑자기 떠올리게 되고, 그 기억이 그를 하루 종일 붙들어 놓게 된다. 사실상 20년 전에 만들어진 또 다른 나. 이런 내용이 기상천외하지만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 누구나 자신이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가면을 쓴 삶을---어쩌면 무의식 중에라도---한번쯤은 상상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독특한 발상이 주는 충격은 오래 가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독특하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라움을 얻었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길게 이어지는 여운은 받지 못했다. 얼마 전에 읽은 '그저 좋은 사람'이 주던 그런 여운. 만일 독특함과 여운이 함께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소설은 명작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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