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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로서의 글쓰기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6. 1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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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의 위기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가,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의 한 공간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 팔리지도 않는 순수문학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논쟁을 보며 느낀 것은, 이들에게는 글쓰기가---소설이든 시나리오든 희곡이든 간에---결국 어떤 '실질적 이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실질적 이득을 위한 도구란 무엇인가. 돈벌이의 도구, 쾌락을 위한 도구,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 혹은 치유를 위한 도구. 이들에게는 글쓰기가 본질적인 무엇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가 그 도구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순간 가치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일단 글쓰기라는 행위를 '다른 이득'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제한 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순문학, 순수문학은 다른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미술계의 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독창적이고 예술성이 뛰어난 미술가들은 기존의 잘 팔리는 방식,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는다. 인상파나 입체파는 물론, 지금 현대 미술이라 지칭하는 예술작품들을 보라. 그들은 그들이 느끼는 것을 다른 이득을 생각하지 않은 채 표현한다. 따라서 그런 예술작품들은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거나 순간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예술작품들은 그 당시 대중이나 비평가들에게 이해조차 되지 못하곤 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만화를 그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지금 시대엔 웹툰을 그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적어도 한 시대를 지배하는, 작가 자신의 오랜 사고 끝에 도출되었거나 그 자신의 본능적 감각에서 우러난 철학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도구로 삼지 않으려 한다.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들은 예술을 수단으로 삼고 싶어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순수문학이라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잘 팔리는 순수문학 작품 역시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런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노력하는 특별한 무엇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것을 논리적 언어로 이야기하려 하고, 순수예술은 그것을 감각을 통해 창조해 내려한다.

 

따라서 순수문학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순수문학의 위기가 사라진 세상이란 곧 순수문학이 필요하지 않게 된 세상, 그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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