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가 주로 격언(특히 주로 도덕, 노력 등과 관련된)에만 밑줄을 긋는 행위를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표면에 잘 드러나 있는 격언이 소설 속 함의보다 가치가 낮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설 속 격언이 그 소설이 담고자 하는 본질적 방향과 별개일 경우에, 그 격언을 소설과 따로 분리해도 그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별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즉, 소설 <죄와 벌>이 좋은 책인 이유는 그 소설 속에서 여러 격언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소설이 전반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세계 문학을 읽으면서 소설 속 격언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은 실은 명언집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명언집에 담긴 내용들이 별것 아니라는 게 아니다. 다만 독자가 명언집에서도 볼 수 있는 격언 위주로 소설을 읽어 내린다면, 그 소설을 읽되 제대로 된 이해에는 다가가지 못할 확률이 높음을 말하고 싶다.
독자가 어떤 세계 명작을 읽으며 긋는 밑줄이 격언과 같은 외적인 것들에만 치우친다면 독자는 그 소설을 가치가 과대평가된 소설, 혹은 왜 세계 명작으로 선정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소설, 혹은 명언이 많기 때문에 명작으로 분류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은---비평이 독자와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면---독자에게 이 소설이 왜 장르 소설, 연애 소설이 주는 재미를 주지 못함에도 명작이라 불리는지를---그게 비록 인상에 의존한 비평이라 할지라도---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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