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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의 한판에 대하여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5. 3. 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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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5년 SBS 검도왕 대회의 오심 논란이 뜨겁다. 논란이 되는 그 부분을 직접 편집해서 유명한 검도 사이트에 올려 봤는데, 역시 댓글로 많은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었다. 바로 아래 영상이다.

 

 

 

문제는 <유효격자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기세나 기회, 존심, 기검체 일치 등의 여부를 봐서 한판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이냐>에서 시작한다. 대다수의 동호인들은 유효격자가 없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한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타격이 빗나갔다면 아무리 기세와 기회가 좋았더라도 한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 영상에 나오는 두 시합은 그들 입장에선 오심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논란'이 있다는 것은 오심이 아니라 한판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는 뜻이다. 즉 기세, 기회, 존심 등이 한판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면 유효타격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한판이 된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유효타격이 아닌데도 한판으로 인정되는 시합을 보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설함을 알 수 있다: "빗나가긴 했지만 기세가 충분했기 때문에 한판으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해설을 하시는 분들은 대개 검도 7단 이상의 고단자 선생님들이다.

 

이런 상이한 해석 때문에 한쪽에서는 심판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선수들이 한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물론 대한검도회의 고단자 선생님들이나 임원들의 생각이 '사실상' 한국 검도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기에, 한판에 있어 유효격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재의 검도 방향과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일본에도 오심 논란으로 아주 유명한 시합(에이가 나오키와 미야자키 마사히로의 제47회 전일본 검도대회 준준결승: (영상 링크, 3:38초 부근)이 있는데, 그 시합에서 오심으로 지게 된 당사자(에이가 나오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에이가 역시 결과적으로 그 시합이 오심이 아니었다고 인정하는 걸 볼 수 있다. 에이가 자신도 처음에는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을 바꾼다. '아, 한판으로 진 게 맞구나' 하고. 물론 에이가가 진심으로 인정해서 한 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것들을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한판 여부에 유효격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판에 대한 이런 논란은 검도가 스포츠인가 아니면 무도인가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검도가 스포츠라면 한판의 여부는 누구라도 알 수 있게 정형화되어야 한다. 결과에 대한 논란이 없도록 판정이 객관적이어야 하며, 현재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전자 장비의 도입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검도가 무도라면, 타격 부위를 건드린 것만이 능사가 아니게 되며, 또한 한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다면 유효 타격 부위에서 좀 벗어났더라도 그걸 유효격자로 "봐줄 수도" 있게 된다. 즉 판정이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게 된다. 따라서---심지어 상대방은 날 건드리지도 못했고 나는 상대방을 제대로 쳤어도---이해 당사자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판정이 나오게 된다.

 

종합해 보면 검도 고단자들과 각 국가의 검도 임원들의 생각은, "검도는 무도이며(따라서 한판의 판단이 주관적이게 된다), 한판의 여부에 유효격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검도의 방향은 향후 바뀔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검도가 추구해온 바를 보면 변화는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것이고, 따라서 한판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비슷하게 동시에 쳤을 때 누구는 한판이 되고 누구는 한판이 되지 않았는데, 이것을 기세나 기회 등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결국 심판의 주관성을 인정하겠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세나 기회를 판단할 때조차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니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검도가 무도이든 스포츠이든 간에 판정 논란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무도라는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판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검도라는 운동 역시 그것을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있어야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동호인들이 지속적으로 한판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는다면 국제검도연맹 차원의 합당한 해석 혹은 보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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