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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드러내기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2.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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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대부분은 자사의 제품을 통해 당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표현에 동의한다. 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신분제가 폐지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다른 방식을 통해 자신의 신분들 드러내고자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 태도에서, 이 사회에 여전히 봉건적 형태의 신분이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한 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신분을 살 수 있으며 그것이 세습될 수 있다(자본은 세습되기 때문에)고 믿는 사회에 거주한다. 그리고 신분을 살 수 있는 그것으로 정신적 가치마저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배우며 물었다. 왜 우리 선조들은 신분제에 대항하지 않았느냐고, 이상하다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아주 먼 훗날, 우리 후세들은 물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 선조들은 이 새로운 신분제에 대항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우리 후세들이 그런 질문을 했다면 그들도 모르고 있는 것일 테다. 일단 위로 올라갈 기회만 열어놓으면 사람들은 신분제에 대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라의 6두품도, 조선시대의 서얼도, 대다수 평민들도 신분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외치지 않았다. 신분제에 대항했던 백성들도 그저 자신들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그리고 국교를 통해 신분제의 안정을 꾀했던 이전 세기의 국가들처럼, 자본의 논리에 수긍하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신분을 안정시켰다. 돈을 소유한 자는 탐욕스럽게든 사치스럽게든,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롭게 그것을 쓸 권리를 지니며, 그 성스러운 권리는 밑바닥의 우리들도 언젠간 취할 수 있을지 모를 영역이기에 침범되어서는 안 되었다. 우리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위로 올라갈 그 날을 꿈꾸거나, 올라가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거나, 다음 생애에는 부자로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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