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좋은 글'을 올렸다. 추천수 1위로 등록된 글이었다. 얼마나 좋은 글이 써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제목을 클릭해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 글은 그다지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글은 "올해 안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야"라는 점쟁이의 말처럼 매우 모호한 동시에, 호의적으로 생각하면 결국 옳을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들의 모음이었다. 올해 안에 겪을 수많은 일들 중 좋은 일이 없을 수는 없기에 점쟁이의 말은 무의미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 '좋은 글'을 표방한, 추천수 1위를 등록한 그 글 역시 비슷한 수법을 쓰고 있었다.
그 글의 내용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부모가 충고했던 말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결국 옳은 말이니 부모의 말을 들으라"는 부분이었다. 이 세상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부모들이 있다. 굳이 자세히 파고들지 않아도 그 부모들의 말이 모두 옳을 수는 없으며, 심지어 대부분 옳다고도 말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모도 그저 일반적인 사람일 뿐이며, 따라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들만이 특별히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는 폭력배도 자기 자식에게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고. 즉, 부모는 결국 자식에게는 옳은 이야기만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주장은 그 폭력배 부모가 자식에게 '항상' 옳은 이야기를 한다는, 불가능한 전제를 해주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옳은 이야기'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와는 어울리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도 부모의 말이고, 노동 운동을 하고 있는 노조가 보이면 넌 저렇게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부모의 말이다. "공부 못하면 저 사람처럼 되는 거야." 8,90년대에 부모가 자식에게 했던 말이 아니다. 바로 며칠 전, 아르바이트생의 권익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던 한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을 본 어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의 눈을 가리며 한 말이다. 그 아이의 눈을 가리며.
우리는 책을 많어 견문을 넓히라고 배운다. 나는 그 이유가 어떤 말이나 행위의 진실을 판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아이의 눈을 가린다. 아마도 그 부모는 자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런 약자들, 불행한 자들을 알게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힘과 권력, 돈을 쥔 자들과 어울리기도 바쁜 판국에 혹시라도 저런 패배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면... 어떤 부모들은 바로 그렇게 생각한다. 넌 이런 걸 알 필요도 없고 관심 두어서도 안 된다고. 당신은 여전히, 부모는 자식에게 결과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한다고 믿는가? 어쩌면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옳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으로 옳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옳은 이야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
우리는 가끔씩 누군가가 한 이야기가 진리라는, 결코 틀릴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때론 신의 이름으로, 때론 부모의 이름으로 그런 말들이 오간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오래되고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열린 자세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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