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파편 찾기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4. 10. 14. 07:03

본문


유리그릇을 방바닥에 던져 박살내버린 적이 있다.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조각난 유리 그릇 사이에서 흰 가루마저 날렸다. 그 뒤 난 열심히 그 흔적을 치웠다. 치운다고 치웠지만 그 파편은 잊혀질 때쯤 다시 나타나곤 했다. 책장 바닥 안쪽에서, 냉장고 밑에서, 때론 화분 받침 아래에서. 마치 상처는 치유돼도 그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어느 날 밤, 고양이가 책장 바닥 안쪽을 긁는 소리가 났다. 어떤 조각이 둔탁하게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난 고개를 숙였고, 고양이 발 앞에 유리그릇의 파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밤에도 그런 식으로 또 하나. 그때마다 고양이는 똑바로 날 응시했다. 이제 이걸 치울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기라고 하는 것처럼. 난 고양이를 살며시 쓰다듬어 준 뒤 파편을 들고, 천천히,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