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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로 요약하는 습관

브런치북/딱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by solutus 2020. 12. 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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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유용하다. 심각한 허언증을 앓는 사람도 이를 완전히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난 인터넷을 하다가 막심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기사 제목에 흥미를 느껴 읽으러 들어갔는데 제목과는 상관없는 시시한 글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곤 했던 것이다. 낚시성 기사는 차라리 양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글자 크기와 색깔이 제멋대로이며 글 중간중간에 휘황찬란한 플래시 광고가 들어가 있어 읽기를 방해하는 데다가, 끝까지 인내하여 읽더라고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글이 허다했다. 댓글은 또 어떤가. 인터넷 시대의 민심을 읽을 수 있다는 그 공간은 구체제를 고리타분하게 바라보는 신세대와 영원히 젊게 살기를 열망하는 구세대들이 기존의 질서를 조롱하는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이들은 질서 정연하고 논리적인 글쓰기도 고리타분하게 여겨, 지난 세기의 과격했던 모더니스트와 다다이스트 들마저 두 손 들게 했다. 이들은 어쩌면 태어난 지 2주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말을 하게 될 무렵 스페인으로 건너간 뒤, 8살이 되던 해에 베이징에서 스파르타식 교육에 입문했다가 중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입시 코디네이터와 함께 강남에 들어온 신인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중 적지 않은 이가 상류층 진입에 실패하여 상대적 열등감에 구속되고, 해외 유학이라는 '스펙' 때문에 일반 대중의 정서에서도 멀어져 그 불운을 인터넷에서 해소하는 은둔자가 되고 만다. 이처럼 세상이 불행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인터넷이 자극적이고 비생산적인 글로 가득 차 있는 게 얼핏 이해된다. 그런데 "내가 일빠닷!"이라는 인터넷 유희는 대체 어떤 구조적 불행과 연관이 있는 걸까? 그건 그냥 단순한 놀이가 아닌가? 그때 문득 우리는 왜 이렇게 무의미하고 공격적인 글을 쓰고 읽으며 또 그런 행동에 매혹을 느끼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어쩌면 여기에 모종의 메시지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먼저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뉴스를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상의 이 공간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사건을 선정적인 제목으로 표상하는 특별한 곳이다. 우리가 뉴스를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둔한 정치인의 행태는 화풀이 대상으로 적절했고, 주식과 부동산 동향이 제공해 주는 불로소득의 멋진 환상은 삶의 활력소로 적절했으며, 연예인이 등장하는 가십거리는 우리의 탐미적이고도 관능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다. 어떤 고상한 급진주의자들은 그런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뉴스를 채우는 인간들은 파시스트임이 분명하다며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그러나 이는 잘 모르는 소리라는 게 지배적이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되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객관적 고찰과 그것에서 유도된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최상의 포털 사이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사이트이며, 그를 위해 고뇌에 찬 철학적 고민보다는 파괴적인 분노와 일탈적인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사이트의 첫 화면으로 내놓는 게 당연하다. 무척 그럴듯해 보이는 가설이다. 조작 방송을 하는 유튜버들의 탄생과 그들이 획득한 부와 인기는 이 가설이 신빙성 있는 이론임을 보여 주었다. 자극적인 내용을 선정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포털처럼, 유튜버들도 독자의 만족을 증가시키고자 선정적 재미에 힘쓰는 것이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처럼, 우리는 욕을 하면서도 그런 소재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대체 왜 우리는 인터넷의 허무한 속성에 지속해서 빠져드는 걸까? 어쩌면 단순한 재미 이상의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여기에는 세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테오그니스 학파의 주장으로, 이들은 우리가 시간을 함부로 소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인터넷을 한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 청소기나 자동 세척기와 같은 기술 발전은 개인의 여가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려 주었지만, 직장과 가족, 그리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바람에 취미 생활을 할 여력이 없었던 사람들은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시간의 소모 그 자체를 취미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휴대전화만 손에 쥐면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시간을 탕진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뭔가 하나에 집중할 시간 따위는 없으며 그럴 가치도 없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소비를 통해서만 우리의 자유를 자각한다.


모르몬 학파는 다르게 접근을 한다. 이 학파는 글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모름지기 인터넷의 글이란 본문보다는 밑에 달린 댓글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어서 이제는 댓글부터 보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이런 현상에서 타인의 관심에 목말라 있는 우리의 욕구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댓글을 많이 '낚으려면' 정직한 제목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다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함으로써 하마터면 잊을 뻔했던 관계의 윤리학을 생각나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또 내가 먼저 다른 이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면 그 역시 보답으로 내 글에 댓글을 준다는 상부상조의 미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해 주어 점차 희석되고 있는 도덕의 원리를 깨우칠 수 있게 해 준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 부모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때론 상대방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주기도 하며 댓글 세계 특유의 유대를 이어나가는데, 모르몬 학파에 따르면 바로 거기에 현대인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삶의 원리가 담겨 있다.


마지막 학설은 코핫 학파의 주장으로, 그들은 인터넷의 가벼운 글이 망가짐의 미학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과거 중후한 연기를 펼쳤던 중년 배우들이 '내려놓는' 연기로 젊은 세대와의 만남을 모색하는 것처럼, 인터넷 기자나 블로거, 유튜버 또한 망가지는 방식으로 방문객의 흥미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과 영상이 있다. 이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글과 영상을 자극적이고 비상식적이며 소비성 강한 쾌락과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했는데, 코핫 학파는 이것이 현대 사회상을 극렬히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혹시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자가 우리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권력은 선전과 선동으로 대중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율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소비나 하며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유도된 소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인터넷에서 팔고 소비하며 현실에서 멀어졌고, 가상의 다툼에 열중하게 되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권력이 세워 놓은 무대가 더욱 공고해지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혹시 그런 것 아닐까?


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세 학파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테오그니스 학파는 내 글이 너무 길어 읽을 수가 없었다는 답변과 함께 앞으로 세 줄로 요약하는 습관을 기르라며 충고해왔고, 모르몬 학파는 이메일은 은밀한 사이에나 주고받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자신들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였으며, 코핫 학파는 다시 한번 스팸 메일을 보내면 평생 후회하도록 해주겠다는 경고를 질 낮은 단어를 섞어 보내왔다. 그 경고 밑에는 "어떤 멍청이에게 받은 스팸 메일! 막간 복수극!"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예고편이 공유되어 있었다. 그렇다. 아무래도 이들 뒤엔 참으로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는 자가 있는 게 틀림없다.

 

 

<딱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10화 "세 줄로 요약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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