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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웃기는 세상이라니까요

브런치북/딱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by solutus 2020. 11. 22.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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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에는 문사에서 두 종류의 종이 신문을 팔았다. 하나는 당시 거의 모든 가정집에서 매일 받아 보았으나 지금은 온라인 배달 상품의 완충재가 아니면 만나보기가 어렵게 된 일간 신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간 신문의 절반 정도 크기에 배달 편으로 받아보기보다는 노점상에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주간 신문, 타블로이드였다.


타블로이드는 일반 신문과 여러모로 달랐다. 크기나 발행 횟수는 사소한 차이였다. 가장 큰 차이는 단연코 자극성에 있었다. 이 타블로이드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걸 제1의 과제로 삼았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 손이 가게끔 해야 했기에 신문 겉면에 커다랗게, 그것도 빨간색을 써서 '충격, 경악, 알고 보니' 이런 단어로 도배를 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충격! 정치인 A 씨 알고 보니!", "헉! 그곳에 있었던 연예인이? 경악!" 타블로이드를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런 표현에 익숙할 것이다. 조회 수에 종속된 오늘날의 뉴스 기사, 블로그, 유튜브 같은 인터넷 미디어도 과거 타블로이드의 선례를 따라 그 같은 제목을 뽑는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렬한 건 사진이었다. 타블로이드 전면에는 항상 천연색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이 사진 속 인물들의 눈에는 검은 줄이 그어져 있을 때가 많았다. 초상권 등의 문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가린 것이었는데, 모자이크나 블러 기법을 선호하는 요즘과는 달리 당시에는 검은 줄로 눈을 가렸다. 이상하게도 그 사진, 검은 줄로 눈을 가린 인물 사진이 내 마음을 자극했다. 어쩌면 그때 내가 <셜록 홈스>와 <괴도 뤼팽>,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따위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호기심은 그렇게 동화적이지만은 않았다. 사진 속 그들은 비밀스러웠고 어떤 면에서 퇴폐적이었으며, 그래서 내가 아직 알아서는 안 되는 어른들의 비밀을 들추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타블로이드를 보려고 할 때마다 부모님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신문을 빼앗아갔다. 부모님은 활자 인쇄물에 관대하였고 오히려 많이 읽어야 한다며 권유하였지만, 타블로이드만 보려고 하면 누가 이런 걸 보라고 했느냐며 혼을 냈다. 종이로 된 것 중에 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건 만화책뿐이었다. 난 어째서 타블로이드가 만화책 같은 취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타블로이드의 제일 안쪽에 있기 마련인, 검은 줄로 눈을 가린 야릇한 사진과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그것 때문에 신문 전체를 못 보게 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글자로 가득한 데다가 때로는 한자가 섞여 있어 읽기 어려운 저 커다란 신문은 스크랩까지 해가며 읽으라고 권하면서도 왜 타블로이드는 쳐다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나의 이런 의문에 부모님은 그 신문엔 유익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없다고 답해 주었다. 타블로이드는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의 가십거리로 가득해서 읽어봤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난 그 대답이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다. 난 학교에서 아니 땐 굴뚝엔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속담을 배웠다. 그러므로 타블로이드의 기사는 근거가 허술할지는 몰라도 응당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또 내가 연예인이나 정치인 들의 뒷이야기, 흔히 말하는 '찌라시'를 알게 되고 또 그걸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당사자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엔 인터넷은커녕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률도 높지 않을 때여서 우리끼리의 대화는 그저 학교 안에 머물 뿐이었다. 신문으로 돌아다닐 정도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게 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부모님의 설명은 납득이 되질 않았다. 부모님은 그저 내가 학업에만 몰두하기를 바랐다. 다른 건 핑계였다. 난 어른들의 말씀을 이해하는 척했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어른들이란 저렇게 뻔한 것을 숨기려는 안쓰러운 존재라는 조악한 동정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되어 경제적 여유와 여가를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를 통해 해소하는 대중사회의 일원이 되고 보니, 그때는 납득이 되지 않았던 부모님의 말씀이 결국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타블로이드에 의지한 채 저 남자 배우의 연기는 정말 형편없으며 생긴 것도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 질환의 해소라는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잘못이 아니었지만 윤리학적 관점에서는 잘못이었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든 그 내용을 단순히 반복 재생산하며 비웃거나 혐오하는 것은 부도덕을 의미했는데, 그런 부도덕은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난 그를 원했던 것이다. 겉멋 든 아이들이 공포와 선동으로 학급을 휘어잡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며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걸 두려워하듯, 난 타블로이드의 자극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떠벌리며 인기라는 보상적 쾌락과 인정이라는 강자의 권력이 날 따라오길 바랐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타블로이드 신문을 보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디서 보고 들은 추문으로 시시덕거리거나 비난을 늘어놓으며 법관이라도 된 양 행동하는 것은 도덕성이 덜 발달한 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부모님은 인간의 저속한 면을 아주 잘 이용하는 황색언론의 위협에서 나를 보호해야 했고, 이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응당 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인간은 판단하기보다는 믿으려 한다는 세네카의 격언과 먹물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우리네 속담에는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자녀를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지녔던 어른들마저 결국 황색언론에 물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선정적 대중 매체들은 유명인이 우리와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동떨어진 차원의 비인간적인 사물인 것처럼 독자들을 유도했고, 자신들이 흘리는 소문이 당사자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가다가 유명인을 만나면 그에게 손가락질했고, 양해도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으며, 면전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댓글로 거리낌 없이 뇌까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들은 '그들은 연예인이니까, 유명 인사니까 사생활 침해와 비난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악성 댓글, 이른바 '악플'에 시달리던 유명인이 자살하면 정신력이 약한 것으로 몰아갔다. 이처럼 인터넷 대중 매체는 우리가 댓글로 모욕적 언사를 늘어놓을 수 있도록 두 가지 신성한 권리를 내려주었으니, 하나는 '잘못이 있는 자에게는 악성 댓글을 남겨도 된다'라는 윤리적 정당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들이 악성 댓글을 다니 나도 악성 댓글을 달 수 있다'라는 평등의 저울이었다.


어느 날 나는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업원이 다가와 탁자에 물을 한 잔 내려놓았다. 그는 내가 읽고 있던 타블로이드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사진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산 마리노 공국의 영화배우, 티타노 마지오레입니다. 우리 가게에도 한 번 왔었죠. 어제 유튜브에서 본 건데, 3일 전에ㅡ이제 전 부인이라고 불러야겠네요ㅡ레프 이바노비치 야신과 이혼하고 산타 소피아와 새살림을 차렸다고 하더군요. 글쎄 위자료로만 610만 달러를 지불했다지 뭡니까. 지금쯤이면 투발라에서 빌린 레닌그라드 산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비밀리에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겠군요. 하여튼 돈이면 다인 줄 아는 파렴치한이 따로 없어요. 그렇게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랑 결혼한 여자도 이상하고. 끼리끼리 논다고 하니 비슷한 사람이겠죠? 새파란 게 돈독이 올라 늙다리에게 몸을 팔다니. 아무튼 웃기는 세상이라니까요."


난 그에게 산 마리노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빙긋 웃으며 나에게 서브마리노 한 잔을 가져다준 뒤 계산서에 만 원을 추가했다.

 

 

<딱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08화 "아무튼 웃기는 세상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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