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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란을 넣은 밀라노식 리소토, 사프란과 이탈리아의 쌀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5. 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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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라노 지방의 리소토[각주:1], 이른바 '리소토 알라 밀라네세'는 꽤 유명한 음식이다. 파네토네와 함께 밀라노를 대표하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리소토의 유명세는 사프란 덕분일 것이다. 밀라노의 리소토에는 붉은 사프란이 들어가고, 이 사프란으로 인해 리소토의 색이 노랗게 물든다.


일부 역사가들은 사프란이 밀라노에 나타난 최초의 시기를 13세기로 보고 있는데, 어떤 경로로 사프란이 밀라노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다만 밀라노 출신으로 교황이 된 첼레스티노 4세가 사프란을 자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첼레스티노 4세는 1241년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니 13세기를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사프란이 향신료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로 보고 있다.


중세인들은 요리에 여러 가지 색을 입히길 좋아했는데 대표적인 재료로 금가루가 있다.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은 손님들을 초대하여 금가루를 가득 뿌린 요리를 대접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사치스러운 대접을 자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동양에서 건너 왔을 가능성이 높은 사프란이 나타났다. 음식 재료를 노랗게 물들이는 사프란은 금가루의 적절하고도 저렴한 대용물이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처럼 중세 시대엔 금가루의 저렴한 대체재에 불과했던 사프란이 지금은 무게로 따지면 금에 못지 않거나 그 이상의 가격을 자랑하는 몸값을 자랑하게 되었다.



2.

쌀을 소비하지 않을 것 같은 서양인들도 적잖은 양의 쌀을 직접 재배하며 이용하고 있다. 미쉐린 스타를 받았던 이탈리아 요리사 카를로 크라코가 쌀을 두고 밀라노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서양인들도 쌀로 여러 가지 요리를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음식으로는 리소토와 파에야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리소토를 할 때, 스페인에서는 파에야를 할 때 쌀을 쓴다. 


이탈리아인들은 우리나라처럼 대체로 자포니카 품종의 쌀을 사용한다. 자포니카 품종은 인디카에 비해 통통하게 생겼으며 끓여도 쉽게 물러지지 않는다. 자포니카에도 여러 품종이 있는데 베네토 지방 사람들은 '비아로네 나노' 품종으로 리소토를 만들고, 밀라노 지방 사람들은 '카르나롤리' 품종을 선호한다. 이들 품종은 굽거나 끓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라자 77'이나 '리베' 품종에 비해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리소토로 적합하다. 특히 카르나롤리를 고급으로 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는 쌀도 대체로 자포니카 품종이고 전분 함유량이 높아 리소토에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이탈리아인들은 쌀을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도정할 뿐만 아니라 햅쌀을 선호하는 우리와 달리 숙성된 쌀을 좋아하기에 리소토를 만들 때 유의할 필요가 조금 있다. 우리의 쌀은 이탈리아처럼 몇 년 묵은 쌀이 아니라 백미에다가 햅쌀일 때가 많기에 이탈리아의 리소토와 같은 '알 덴테', 즉 심지가 약간 남아 있는 상태로 조리하기가 쉽지 않다. 쌀이 더 빠르게 호화되는 탓에 잘못하면 리소토가 아니라 죽이 될 수 있다. 죽이 될까 우려하여 너무 빨리 요리를 끝내면 설익은 상태가 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탈리아인이 아니니 꼭 '알 덴테'를 최고의 상태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다. 조금 더 익히면 조금 더 입맛에 맞을 수 있다.


20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는 리소토를 만들 때 껍질을 다 벗겨내지 않은 쌀을 사용하라고 권한 바 있다. 껍질 부위에 영양이 많으므로 적당히 벗겨서 먹는 게 좋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보자면 5분도미나 7분도미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이것은 알 덴테를 떠나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3.

이탈리아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음식이나 재료에 함부로 이탈리아와 연관된 이름을 붙이면 무척 싫어한다. 크림을 넣은 면 요리를 두고 알리오 올리오라고 하면 바로 황당하다는 제스쳐가 나온다. 그래서 나도 그간 여러 리소토를 만들면서도 이탈리아 지명은 되도록 넣지 않았었다. 특히 밀라네세가 그랬다. 


앞서 언급했던 작가,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는 리소토 알라 밀라네세에 가장 좋은 품질의 재료들을 넣어야 하고, 요리를 하는 내내 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며, 의식을 치르듯 요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껍질을 다 벗기지 않은 비아로네 품종의 쌀을 써야 하고, 마가린이 아닌 버터를 넣어야 하며, 육수는 당근과 셀러리를 넣어 삶은 쇠고기로 우려내야 한다고도 했다. 치즈는 물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외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리고 사프란이 있어야 한다. 


난 이탈리아산 쌀을 쓰지 않았고 스톡도 간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름 신경 써서 선정한 재료도 있다. 마가린이 아닌 무염 버터로 쌀알을 코팅했고, 그곳 농부를 친구로 두어야만 진품을 구할 수 있다는 리구리아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로 산뜻함을 살리고자 했으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로 지방의 맛을 추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프란을 넣었다. 이 정도면 동양의 어느 곳에서 만든 요리에 감히 '밀라네세'란 이름을 붙여도 못 본 척 넘어가 주지 않을까?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의 주장대로 의식을 치르듯 요리했느냐고 묻는다면, 이런 재료를 앞에 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의식을 치르듯 요리하게 된다고 고백해야겠다.




  1. '리조또'라고 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고 '리조토'라고 쓰기도 한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리소토'로 표기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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