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전기레인지와 가스레인지의 선택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5. 27. 12:43

본문

대개의 가정집에는 가스식 열 점화 조리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가스를 연료로 음식을 가열할 수 있게 도와주며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최근 이 도구 대신 전기를 연료로 하는 전기레인지를 사용하는 집이 늘고 있다. 식탁의 역사에 관한 글을 썼던 영국의 작가, 비 윌슨은 이런 변화가 그리 탐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인덕션과 같은 전기레인지에선 그다지 애착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가스레인지를 옹호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가스레인지는 불꽃의 이점을 모두 제공하되 단점은 없다." 


비 윌슨은 가스레인지에 단점이 없다고 했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다. 가스레인지에서 새어 나올 수 있는 가스와 그 가스가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이라면 전기레인지도 의심을 떨구기 쉽지 않다. 전기레인지, 그중에서도 인덕션에서 나오는 전자파 역시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따라서, 사실관계에 여전히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인체에 미칠 수 있는 나쁜 영향을 모두 고려한다면 둘 다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가스식이든 전기식이든, 폐쇄된 공간에서 음식 재료를 가열하는 행위 자체가 건강에 해롭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환기를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생각하는 가스레인지의 단점은 다른 것이다. 바로 과열점이다.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통상적으로 화구의 크기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그 화구에 따라 한 겹의 불꽃이 동그란 열주를 이루게 되어 있다. 따라서 화구의 크기에 변화를 주더라도 냄비에 가해지는 열원의 위치는 그에 따라 고정된다. 상업용 가스레인지는 불꽃이 여러 겹으로 나온다거나 불꽃 자체의 화력이 세서 이런 문제가 덜하지만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특정 부위가 먼저 과하게 뜨거워지는 과열점을 피하기 어렵다. 과열점이 생기면 그 위에 올려놓은 음식 재료들이 동일하게 익지 않고 과열점 위의 재료들이 먼저 익는다. 이런 문제는 스테인리스 같은 전도율이 높지 않은 재질로 만든 냄비나 프라이팬을 사용할 때 더 잘 드러난다. 과열점 위에 있는 재료는 타들어 가는데 가장자리에 있는 재료는 여전히 차가운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음식을 조리할 때 끊임없이 재료를 뒤섞어 주어야 한다. 원하는 만큼 익히는 데에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전도율이 높은 냄비를 사용하는 것이다. 구리 재질이 특히 좋다. 구리로 만든 팬은 전도율이 높아서 과열점 문제를 어느 정도 비껴갈 수 있다. 구리 냄비는 순수 구리만 쓰기보다는 스테인리스나 주석을 결합하여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때 구리 이외의 재질은 얇을수록 좋다. 구리보다 스테인리스가 훨씬 더 두꺼운 냄비도 있는데, 이런 냄비에 사용되는 구리는 장식적인 기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스레인지와 구리 냄비의 조합. 2020. 4.29.



전기레인지는 가스레인지와는 달리 바닥 전체를 가열한다. 성능 좋은 전기레인지는 화구의 크기도 조절이 가능하다. 그래서 과열점이 생기지 않는다. 청소가 간편하다거나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등의 이점도 있다. 비 윌슨은 어쩌다 이런 장점을 놓치게 되었을까? 아마도 불꽃의 원시적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기레인지의 열은ㅡ인덕션이 특히 그러한데ㅡ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래서 불이라는 오래된 요리의 기원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전기레인지는 가스레인지를 대체하는 고급 주방 도구로 자리를 잡았으며 이러한 추세는 상당히 오래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인덕션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자파 외에도 값비싼 초기 비용과 수리 비용, 누진세의 우려,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제한적이라는 걸 들 수 있다. 인덕션은 자성을 띨 수 있는 도구만 가열할 수 있어서 유리나 알루미늄, 구리, 흙 등의 재질로 된 냄비와 팬은 가열할 수 없다. 냄비에 자성 물질을 덧대거나 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할 수 있지만 비용이 추가될 뿐만 아니라 순수히 조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좋지 않다. 덧댄 만큼 가열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도율이 좋은 구리 냄비의 바닥에 전도율이 낮은 스테인리스를 두껍게 덧대는 일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비용적 측면에서 인덕션 구매를 고려할 여유가 된다면 인덕션 대신 가스레인지와 구리 냄비를 사용하는 조합도 생각해 볼 만하다. 조합에 따라선 비용에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물론 가스레인지와 스테인리스 냄비의 조합으로도 충분히 좋은 요리를 할 수 있다. 다만 예열을 충분히 해줘야 하며 조리 도중 냄비의 온도가 떨어지면 재가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롯지의 저렴한 무쇠팬을 쓰는 것도 좋은데, 무쇠팬은 시즈닝을 해줘야 해서ㅡ시즈닝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ㅡ일반 가정에서 편하게 쓰기는 쉽지 않다. 사용 빈도, 주로 사용하는 음식 재료, 누진세, 각종 도구의 사용 가능 여부를 따져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