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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세기와 다육 식물의 선택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5. 4. 22:49

본문

1.

다육식물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었다. 선인장엔 어릴 적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화훼 시장의 다육식물 코너에서 판매하는, 통통한 잎으로 꽃 모양을 낸 것 같은 다육식물에는 좀처럼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육식물을 기르게 된 것도ㅡ선인장과에 속한 식물을 제외하면ㅡ몇 년 전 아내가 다육식물을 어디에선가 가져왔을 때가 처음이었다. 아내가 가져온 다육식물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녹색에다가 크기도 작았으며 모양이 꽃을 닮긴 했으나 어쨌든 꽃은 아니었다. 그나마 보아줄 만 했던 꽃 모양은 몇 달도 되지 않아 사라지기 일쑤였다. 아내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몇 달 전 화훼 상점에 갔을 때 다육식물을 적극적으로 고르고 있던 건 아내가 아니라 나였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꽃 구경을 하는 동안 난 바구니를 든 채 다육 코너를 한참 동안 돌아다녔다. 어느새 다육식물의 팬이 된 것이다. 다육식물은 여전히 작고 여전히 전체적으로 녹색이며 환경에 따라 쉽게 웃자라고 만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몇몇 나무와 꽃보기 식물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다육식물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난 그게 좋았다. 게다가 자꾸 보니 다육식물도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모습이 변하는 건 조도가 안 좋아서였을 뿐, 빛을 충분히 보여주니 원래의 매력을 잃지 않았다. 물을 자주 줄 필요도 없었고 건조한 실내 환경에도 어울렸다. 아파트 실내에서 나무를 기르며 몇 번 고생하고 나니 다육식물과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생각 외로 종류가 상당히 많았다. 다육식물은 대체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선인장과 식물을 제외하고도 종류가 상당했다. 꽃을 피우는 것도 있었고 심지어 나무도 있었다. 바오바브나무[각주:1]도 다육성 식물이었다.



2.

실내 식물로는 대체로 관엽식물과 다육식물이 꽤 인기가 있다. 난 지금도 관엽식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크기가 커서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형편이라면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에 비해 다육식물은 대체로 작고 가격도 몇천 원으로 저렴해서 부담스럽지 않다. 관엽식물보다 관리가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육식물은 잎과 줄기에 다량의 수분을 저장할 수 있어서 건조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주기를 뜸하게 해도 된다는 뜻이다. 건조해지기 쉬운 겨울철 실내 환경에도 적합하다. 대체로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비료에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바쁜 현대인에게는 이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3.

다육식물이라고 해서 빛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다는 상식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꽤 빛이 필요한 식물이다. 빛이 부족해도 그런대로 살아가기는 하겠지만 잎의 색이 변하고 웃자라며 줄기가 가늘어지고 잎의 형태도 변한다. 물론 꽃도 피지 않는다. 모양이 변하면 관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버리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실내에서 통풍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깍지벌레로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다육식물도 실내에서, 아파트 같은 환경에서 키우기에 적합한 식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파트에서 키우기 쉬운 식물이란 없으니 '그나마'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쉽다는 것은 관리에 힘쓰지 않아도 쉽게 죽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창에서 1.5m 정도 안쪽으로 들어오면 빛의 밝기가 약 80% 정도 줄어든다. 이 정도를 직사광이 없는 밝은 광의 범위로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어두운 반그늘 이하에서 다육식물을 키우면 색과 모양이 상당히 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집에 들어오는 빛의 밝기를 고려해서 다육식물을 선택하고 배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빛이 부족한 집이라면 반양지성 다육식물을 고를 수 있다. 하워디아속의 십이지권과 보초, 가스테리아속의 게발선인장과 자보, 알로에속의 불야성과 알로에 등은 직사광선을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하워디아속의 다육식물은 반그늘에서도 제법 모양을 유지하는 편이다.


반면 산취나 황금세덤, 월토이, 자태양, 꽃기린 같은 다육식물은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웃자람이 심해진다. 따라서 창가에서 키우지 않으면 관상 가치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다육식물도 빛을 잘 따져야 한다. 잘 따진다 해도 웃자라는 경향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그래도 아파트 실내라는 환경을 생각하면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 게다가 계속 기르다 보면 웃자란 식물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붉은 색이 엷게 비치고 있는 발디(오른쪽). 빛이 부족하여 안토시아닌 색소가 많이 줄어들었다. 라울(왼쪽)도 빛을 받고자 줄기가 길어졌다. 2020. 5. 1.


가스테리아속 자보금. 반그늘에 있어도 형태 변화가 크지 않다. 2020. 5. 4.


줄기가 길게 늘어진 부용(오른쪽). 나름의 멋을 살려 분갈이를 했다. 사진 위쪽으로 만손초와 옥엽이 일부 보인다. 2020. 5. 1.


빛에 따라 잎의 크기가 변한 용월. 빛을 많이 받으면 안토시아닌이 생성되어 붉게 변하지만 우리집 용월은 녹색 엽록소로 가득하다. 2020. 5. 1.



  1. 널리 알려진 바와 다르게, 바오밥나무는 바오바브나무의 비표준어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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