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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어떤 비밀스러운 불구 상태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10. 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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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주네는 자코메티의 조각을 평하며 인간의 외양에서 거짓된 것을 벗겨냈을 때 무엇이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인간의 거짓된 외양은 시선을 방해하는데 자코메티는 그걸 치워버리는 법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탄탄한 뼈대 위에 살아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자코메티는 마치 뼈대가 드러날 정도로 부패해버린 시체처럼 드러낸다. 살펴보자. 악취가 풍기고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가? 어쩌면. 아니, 아마도. 자코메티가, 그리고 장 주네가 보는 것은 그 안에 숨어 있던, 조각칼로 후벼파낸 듯한, 심한 고린내가 나고 있을지도 모를 마음의 상처다. 코를 감싸 쥔 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이 상처로부터, 조각으로부터. 기괴하다고 몸서리를 치며? 아마도. 우리는 평범하고 어리석지 않은가. 장 주네가 보기에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기에" 자코메티는 결국 우리에게 아름다운 무엇을 보여주게 된다. 장 주네는 자신이 말하는 고독이 인간의 비참한 조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고독이란 "비밀스러운 존엄성, 뿌리 깊이 단절되어 있어 서로 교류할 수 없고 감히 침범할 수도 없는 개별성"이다. 반면 우리는 평범하고 어리석기에 고독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애초에 왜 인간의 외양에서 무언가를 벗겨낸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포장하고 치장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벗겨내어 드러낸 뼈대와 상처와 고름을 역겹기 그지없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죽음의 냄새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자코메티의 조각이 얻은 명성은 장 주네가 쓴 그 더러운 시처럼 인간이 지닌 기이한 성향의 결과물일 뿐이다. 자코메티의 저 어둡고 흉측하고 앙상한 조각 위에 신체의 완벽한 근육을 씌운 뒤 황홀한 향수를 뿌리자. 관람객의 탄성을 들으며 혼자라는 상황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자.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개별성이, 예술을 느끼는 능력과 함께 사라진다.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그리고 당신의 고독은 고독의 예술을 알아본다. 하지만 주의하라. 고독은 죽음을 부르는 주문이기도 하니까.


상처를 곧 '미'로 인식하는 장 주네의 감각... 불구가 되어 평생 절뚝거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차오른 자코메티의 기쁨... 자코메티의 말라빠진 조각과 장 주네의 음울한 시는 고통과 미를 바라보는 지평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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