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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키우기 - 정남향 아파트의 장단점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9. 2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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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파트가 정남향이면 살아가는 데 여러 모로 이점이 있다. 하지만 식물, 특히 빛을 좋아하는 식물을 기르기에는 좋지 않을 수 있다. 널리 퍼져 있는 상식과는 달리, 정남향 아파트는 여름철에 집안으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앞이 탁 트여 있어도 그렇다. 늦봄이 시작되면 이른 아침부터 태양의 고도가 상당히 올라가 거실창에서 태양이 보이기 시작할 때가 되면 태양의 고도가 이미 50도를 넘어서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실내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게 된다. 

 

때때로 '집이 정남향이라 사계절 내내 집에 빛이 잘 들어온다'라는 평을 인터넷 카페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그 말대로 만일 사계절 내내 집이 빛으로 가득하다면 그 집은 정남향 집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아마도 남동향이나 남서향 집을 남향으로 통칭해서 말했거나 아니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향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일 테다. 남서향이나 남동향 집은ㅡ앞에 가리는 것이 없다면ㅡ하루 중 언제라도 빛이 실내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또 다른 가능성은 거실의 두 면 이상이 창으로 되어 있는 경우다. 그런 구조의 집을 주상복합아파트나 펜트하우스 또는 단독주택에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판상형 아파트에도 그런 형태를 일부 도입하고 있다. 이런 구조의 집은 한여름에도 빛이 실내로 들어온다. 천정에 창을 낸 단독주택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한쪽 면에만 창이 나 있는 일반적인 구조의 정남향 아파트라면 한여름에 실내로 햇빛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발코니 확장 공사를 한 정남향 아파트의 거실창 높이가 2미터라 가정해 보자. 그러면 빛을 실내로 들이기 위한 태양의 한계 고도를 삼각법으로 계산해 볼 수 있다. 이때 실내에 있는 식물의 잎까지 빛이 도달할 수 있어야 하므로 아파트 벽의 두께와 창틀의 폭까지 고려해야 한다. 발코니 확장 공사를 가정했으므로 벽은 그만큼 두터워지고 따라서 한계 고도는 더 낮아지게 된다. 그런 가정 하에 계산을 해보면 아파트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태양의 한계 고도는 대략 60도 정도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거실창의 높이와 아파트 벽의 두께, 그리고 창틀의 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태양의 고도가 대략 60도를 넘어서면 아파트 실내로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오더라도 창틀을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각 시간별 태양 고도. 5월 20일.
각 시간별 태양 고도. 7월 20일.
각 시간별 태양 고도. 9월 20일.


위 그래프는 동경 129도(서울의 동경은 126도)에 해당하는 태양 고도를 시간별로 나타낸 것이다. 왼쪽부터 각각 5월 20일, 7월 20일, 9월 20일의 태양 고도를 그리고 있다. 제일 왼편에 있는 5월 20일의 그래프를 보면 오전 10시에 이미 태양 고도가 60도에 다다름을 알 수 있다. 이후 태양은 남중했다가 오후 2시가 되어야 60도 아래로 내려온다. 

 

한여름 정남향 아파트의 거주민은 오전 10시 이전에는 태양이 너무 동쪽에 있어서,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사이에는 태양의 고도가 너무 높아서, 그리고 오후 2시 이후에는 태양이 너무 서쪽에 있어서 태양을 보지 못한다. 실내에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7월에도 계속된다(가운데 그래프). 그런데 오른편에 있는 9월 20일의 그래프를 보면 태양이 남중하더라도 고도가 60도보다 낮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양의 높은 고도로 인한 문제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때가 되면 적위값이 작아지기에, 다시 말해 태양이 북동쪽이 아니라 남동쪽에서 떠오르기에 점점 더 이른 시간부터 실내에 빛이 들어오게 된다.

 

 

3.

요약하자면, 정남향 아파트의 경우 5월초부터 8월말까지는 태양의 높은 고도로 인해 실내에서 태양빛을 보기 매우 어려우나 9월이 되면 양상이 달라져 많은 빛을 받게 된다. 그러다 한겨울이 되면 해가 떠 있는 내내 실내에서 빛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정남향 아파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좋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가장 더운 한여름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고, 가장 추운 겨울에는 해가 떠 있는 내내 실내가 빛으로 가득하다. 이보다 더 빛을 잘 이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듯 이런 특징이 식물, 특히 양지 식물을 키울 때는 좋지 않을 수 있다. 한창 광합성을 해야 하는 여름에는 빛을 전혀 받지 못하다가 월동에 들어가는 겨울에야 상대적으로 많은 빛을 받기 때문이다. 이는 여름철에 식물이 웃자라거나 꽃이 피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여름과 겨울에 차이를 두는 식물의 생리작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래 세 장의 사진은 시간에 따른 빛의 추이를 확인하기 위해 촬영한 것이다. 여름 내내 전혀 들어오지 않던 햇빛이 9월이 되자 태양의 위치에 따라 변하며 실내를 점유하고 있다. 향은 정남향에 가깝다.

 

시간별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 9월 20일 오전 10시 41분 무렵.
시간별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 9월 20일 오후 2시 4분 무렵.
시간별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 9월 20일 오후 4시 30분 무렵.

 

4.

아파트에서 식물을 키우기 어려운 이유가 꼭 향 때문만은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발코니 확장에 있다. 요즘 아파트들은 대부분 발코니를 확장하여 없앤다. 이렇게 발코니를 확장하면 거실이 넓어지지만 식물에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바로 에어컨 가동 때문이다. 발코니가 있으면 식물들을 발코니에 내놓아 에어컨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발코니가 없으면 식물도 에어컨 아래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사람도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에 걸리는데 식물들에게 영향이 없을 수 없다. 급격한 온도변화는 식물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6월까지만 해도 새잎을 내며 잘 살아가던 금목서와 벤자민 고무나무가 7월 들어 갑자기 죽어버린 것을 두고 에어컨 때문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에어컨 가동을 7월부터 시작했는데, 우연이라 하기엔 에어컨의 영향이 너무 컸다. 신경을 쓴다고 했지만 온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가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름철에 직사광이 들어오지 않는 것 정도는 반사광으로 어떻게든 대체가 가능하다. 그에 비하면 에어컨으로 인한 급격한 온도변화는 식물에게 치명적이다. 

 

이렇듯 아파트에서, 그것도 발코니 확장이 된 정남향 아파트에서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빛도 확보해야 하고 통풍도 신경 써야 하며 온도 변화에도 유의해야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함께 사는 사람이 같이 겪어내야 한다. 미세먼지가 싫더라도 창문을 열어야 하고 한여름의 더위가 싫더라도 에어컨 가동을 꺼야 할 때가 온다. 이런 것에 비하면 물을 주는 주기나 영양제 투여는 쉬운 문제에 속할 것이다. 

 

어쩌면 여름 동안만이라도 화분을 야외에 내놓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충해는? 분실의 우려나 휑한 집안에서 오는 상실감은? 적은 양의 빛으로도 잘 사는 실내용 식물들을 들이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은 대부분 햇빛을 좋아한다. 그것도 너무나도 많이. 그래서 여전히 선택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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