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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의 기차와 건물 ㅡ 10년의 강산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6.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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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용산역엔 이렇다 할 높은 빌딩이 많지 않았다. 당시 용산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빌딩은 밤 11시에도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환한 야근의 빛을 잃지 않았던 LS용산타워였다. 신용산역 옆으로 빌딩 두어 채가 서 있었지만 평범한 디자인 탓에 존재감은 없었다. 개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현대산업개발의 용산 민자역사는 거의 홀로 '서울'의 이미지를 이끌어야 했다. 밤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포장마차들이 용산역 입구 앞에 노점을 차렸고, 그 길 건너편에선 내가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적지 않은 규모의 홍등가들이 자기 나름의 등을 밝혔다. 언론과 지역사회는 용산이 서울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저녁식사를 하러 용산역 바로 앞의 누추한 감자탕 가게를 들르곤 할 당시엔 그런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어쩌다 용산전자상가를 들를 일이 생기면 용산역 뒤편에 있던 허름하기 짝이 없는 구름다리를 지나쳐 지상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그 통로의 끝에 있던 5층 크기의 터미널 전자상가는 재개발로 묶여 있던 탓에 버려진 건물처럼 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정체되어 있는 듯했지만 '그래도 이곳은 언젠가 좋게 바뀔 거야'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을 뿐. 15년 전만 해도 너른 벌판에 조그마한 역사 하나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던 이곳은 이제 지리를 넘어 사회문화적으로도 서울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의미는 '정지해 있는 듯한 강산도 결국은 변한다'는 것에 있지 않다. 이 속담은 '10년은 강산이 변할 정도로 굉장히 긴 시간이다'라는 것에 방점을 둔다. 실로 10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그래서 흔히 10년을 기다릴 바엔 기대하지 않거나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말한다. '뭐,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러나 지나고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금세 흘러가 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런 착각 뒤엔 지나간 10년보다도 훨씬 긴 20년과 30년의, 혹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10년, 그건 충분히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 뒤에 이어질 또 다른 10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질 것은 자명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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