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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빵의 문화, 반죽기를 이용하여 성공적인 우유 식빵 만들기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7. 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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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가 스티븐 L. 카플란은 프랑스인들이 단순히 '빵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빵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았다'라고 평했다.[각주:1] 이처럼 빵 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게 되지만 빵에 대한 애정은 다른 유럽인들도 가볍지 않다. 할머니가 애정 어린 손길로 만들어 준 음식에 대한 기억은 빵과 관련되어 있을 때가 많다. 딱딱한 빵을 뜨거운 수프에 적셔 먹거나 접시에 남아 있는 고기 소스를 빵으로 닦아내듯 발라먹었던 기억을 유럽인들은 지니고 있다.

 

집집마다 탄두르를 마련해 빵을 굽곤 했던 근동 지역의 주민과는 다르게 유럽인들은 전문 제빵사가 굽는 빵만을 진짜 빵으로 여겼다. 그래서 유럽인들이 집에서 주식으로 먹은 빵은 할머니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빵 자체가 요리 활동에서 빠지는 일은 드물었다. 유럽인들은 가게에서 사 온 빵을 손으로 뜯어먹었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먹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해진 빵을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딱딱해진 빵을 잘라 수프에 넣은 뒤 충분히 끓여 수프째 떠먹는 것은 그 해결책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 차갑고 딱딱해진 밥을 뜨거운 국으로 토렴하며 부드럽게 데워냈던 방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각주:2] 이렇게 수프에 빵을 넣어 먹는 건 유럽, 특히 유럽의 시골에선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세계 야채 여행기>을 쓴 다마무라 도요오에 따르면 수프라는 단어도 원래는 오래되어 딱딱해진 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국물이 스며든 빵 혹은 이를 위해 국물 속에 넣는 빵을 '수프soupe'라고 불렀다. 프랑스어 어원사전에 의하면 12세기 말엽부터 등장한 단어다."[각주:3]


유럽 사람들은 딱딱해진 빵을 커피나 우유에 적셔 먹기도 했고 달걀과 우유의 혼합물에 빵을 담갔다가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 구워 먹기도 했다. 후자의 것을 통상 프렌치토스트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딱딱하게 굳어 못 쓰게 된 빵을 먹기 좋게 만들기 위해 개발된 요리법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에서 유래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팡 페르듀(혹은 펭 페르듀, Le pain perdu)'라고 부르는데, 의역하자면 '먹을 수 없는 빵'이라고 할 수 있으니 프렌치토스트는 먹을 수 없게 된 빵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빵 요리였던 셈이다.[각주:4]

 

켄우드 반죽기로 만든 우유 식빵. 2019. 7. 5.

 

2.

이처럼 빵은 그들의 주식이자 다른 음식의 부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잦았기에ㅡ서민층에선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을 테지만ㅡ설탕과 같은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드는 일이 드물었다. 우리나라는 주식이ㅡ빵을 주식으로 삼는 유럽과는 다르게ㅡ쌀밥이었고 따라서 빵을 간식의 형태로 받아들였다. 떡과 비슷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빵은 유럽의 밋밋한 빵과 달리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자, 혹은 케이크에 가깝게 발전했다. 유럽인들이 우리나라의 빵의 단맛에 놀라곤 하는 건 그런 차이 때문이다. 유럽의 빵은 맛이 밋밋하지만 우리나라의 빵은 맛이 달콤하다.

 

빵이 지칭하는 범위가 다른 것도 차이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과에 속하는 음식도 모두 빵이라 부른다. 즉 우리나라에서 빵이라는 것은 빵 가게에서 팔고 있는 대부분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대체로 단맛이 상당히 많이 난다. 그래서 단맛이 나지 않는 빵은 식빵이나 바게트 정도에 국한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각형의 식빵은 유럽인들, 특히 미국인이 생각하는 빵에 가까운 편이다. 대개 설탕과 마가린이 들어가는데 고급 식빵의 경우 우유와 버터를 넣기도 한다. 식빵은 내부를 팥소나 생크림으로 채우지 않고 카스텔라처럼 달지도 않아서 유럽인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빵과 비슷하다.

 

유럽식 빵이라면 설탕이 아예 들어가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프랑스의 바게트에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지만 독일의 호밀빵엔 대체로 설탕이 들어간다. 프랑스인들의 전형적인 아침 식사용 빵이라 할 수 있는 크루아상은 버터를 많이 활용하고 적게나마 설탕을 첨가한다. 이제 변형 레시피도 많아서 오늘날엔 유럽인들이라 하여 꼭 맛이 밋밋하거나 딱딱한 빵을 주식으로 여긴다고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딱딱한 빵의 대명사인 바게트마저 소비자의 선호도 변화로 부드러워지는 추세다. 또 애초에 빵에 잼을 발라 먹는 경우가 많았기에 서양의 빵은 주식이므로 단맛이 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설탕 자체의 첨가 여부가 아니라 넣는 양, 즉 '정도의 차이'에 있다.

 

 

3.

빵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자 반죽기를 구매했다. 처음엔 빵 반죽기를 구매하면 곧바로 혁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계를 다루는 데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 단축에서 보면 이미 혁신을 체험한 셈이지만 글루텐의 관점에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가정용 반죽기마다 후크의 종류, 회전 속도, 볼의 크기 등의 모두 다르므로 오버믹싱으로 인한 과산화나 너무 느린 믹싱으로 인한 오랜 1차 발효를 피하려면 기계에 익숙해져야 했다.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반죽기는 켄우드에서 나온 SKVL4100이다. 성능은 좋지만 소음과 진동이 심하다는 후기가 적지 않았던 기기였다. 실제 사용해보니 소음과 진동이 가정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소음 크기는ㅡ3단으로 가동했을 때ㅡ일반적인 진공청소기나 식자재 분쇄기와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작았으며 진동 역시 기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시 내 공동주택에서 시간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기계도 아니었다. 소음 문제는 민감도에 따른 개인적인 차가 있을 것이다.

 

켄우드 반죽기의 사용 설명서를 보니 밀가루 반죽의 경우 '1단'에 두고 사용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밀가루 반죽의 구체적인 양까지 제시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모터 과열로 인한 고장 우려 때문에 1단 사용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처음에는 1단으로 놓고 반죽기를 사용했는데 글루텐 형성에 시간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지금은 단수를 올려서 사용하고 있다. 오랜 발효로 맛과 향미를 끌어내고자 한다면 1단을 사용하는 게 좋겠지만,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에게 느긋하게 반죽하고 발효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유하기는 어려울 때가 있다. 지금까지 사용해 본 바에 따르면 300g 정도의 밀가루 양은 3단에서 전혀 문제가 없다. 밀가루 반죽의 양이 적으니 모터가 과열될 우려도 덜하다. 

 

 

4.

이번에 만들어 본 식빵은 우유 식빵이다. 물 대신 우유를 사용해서 우유 식빵이다. 밀가루 300g에 설탕 15g, 버터 12g이 들어갔다. 우유는 216g을 넣었다. 이 레시피는 국내 제빵 실기 시험에서 제시하고 있는 용량을 밀가루 300g에 맞춰 재계량한 것이다. 우유, 버터 모두 표면 온도 36도(하부 온도 26도)에서 밀가루와 혼합하였다. 반죽기는 클린업 단계가 지난 이후부터 2단, 3단에 두고 돌렸으며 작동 시간은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반죽기에 따라, 그리고 기계 사용법에 따라 반죽 시간이 달라지므로 반죽 상태를 확인해 가며 자신만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파트릭 랑부르 지음, 김옥진 옮김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 (경북대학교출판부 2017) 180쪽 [본문으로]
  2. 뜨거운 국물은 차갑게 식은 밥을 데우는 가장 편리한 수단 중 하나였을 것이다. '국밥'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 <시의전서>(1800년대 말, 작자 미상)와 <규곤요람>(1896년, 작자미상)에는 국밥에 '식은 밥'을 이용한다는 명시적 언급이 없다. 그러나 매번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을 서민층이나 남은 밥을 활용해야 했을 조선 후기의 주막에서 식은 밥을 국밥에 활용했을 거라는 추정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국과 밥을 따로 내주는 '따로국밥'은 1950년대 이후에야 대구에서 나타났다. [본문으로]
  3. 다마무라 도요오 지음, 정수윤 옮김 <세계 야채 여행기> (정은문고 2015) 67쪽 [본문으로]
  4. 아키코 사카타 지음, 박정아 외 옮김 <처음 만나는 프렌치토스트 39> (나는북 20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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