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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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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면 야영장의 모든 전등이 발열을 멈춘다. 그렇게 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카라반에서 나왔다. 카라반에서 막 나왔을 때 우리의 눈은 아직 어둠에 익숙치 않았기에 휴대전화의 빛으로 발 언저리를 비추어야 했다. 우리는 야영장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걸었다.


며칠 전의 폭우로 공기는 깨끗했다. 달은 하현달이라 일찍 지고 없었다. 구름마저 투명했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날이었다. 은하수를 찍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듯했다.


밤하늘을 잘 찍으려면 삼각대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난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았다. 별이 잘 보일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난 별에 대한 관념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별을 좋아한다는 것은 순수에 대한 동경을 뜻했다.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저 별은 자산이 된 거주지와 현실적인 돈, 자본주의의 너머에 있었다. 난 그 순수를 잃은 지 오래였기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행위를 더 이상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휴대전화에 앱 하나만 설치하면 실시간으로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시대에, 그런 시대를 열심히 쫓는 내가 밤하늘을 별을 보며 심취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 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 야영장을 한 바퀴 돌아보자며 아내와 함께 나왔을 때 난 카라반을, 텐트를, 빨랫줄을, 옆으로 지나가는 도로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타프에 어른거리는 어른과 아이의 검은 실루엣을 응시했다. 


야영장은 탁 트인 곳 없이 숲으로, 언덕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야트막한 곳이 있어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아도 낮게 떠 있는 밝은 별 하나가 보였다. 난 나도 모르게 앞에 밝은 별이 보인다고 말했다. 금성 아니면 화성일 거라고도 말했다. 붉은 빛으로 보아 화성이었다. 내 눈은 화성 위의 작은 별을, 그 작은 별 위에 떠 있는 또 다른 별을 향했다. 어느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이 참 많네. 난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방위를 알아보기 위해 북극성을 찾았다. 북극성을 찾기 위해 북두칠성을, 카시오페아를 찾았다. 그러다가 독수리 자리를, 거문고 자리를, 백조 자리를 찾았다. 그럼 저 길을 따라 은하수가 지나가고 있겠네. 이렇게 날이 좋은 데도 은하수는 안 보이는구나. 내가 남설악에서 보았던 은하수는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몰라. 우리는 한동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난 오로지 지적 욕구를 대동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환상의 빛이 아니라 특정한 별자리의 알파별이라는 객관적 사실이었다. 그 태도가 내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을 증명하듯 내게 머물렀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우리는 카라반으로 돌아갔다가 가로등이 소등되는 밤 11시쯤에 다시 나오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 조그만 여자 아이가 텐트 안에서 우리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 저 아이가 내 옆에 있었다면 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예전의 나라면 반짝이는 별님이 저 위에서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고, 하늘을 나는 백조 한 마리가 독수리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난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순간 맹수를 경계하는 초식동물의 얼어붙은 표정이 아이의 얼굴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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