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명 '하와이골드'인 벤자민 고무나무(왼쪽 끝)와 여러 식물들로 꾸민 베란다. 2018. 9. 3.
1.
우리는 여전히 외곽 구조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익산 미륵사지의 서탑을 지나쳐 '우리들의 정원' 혹은 '미륵농원'이라 부르는 화훼단지로 향했다. 미륵사지에서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미륵농원은 양재꽃시장처럼 커다란 규모는 아니었지만 둘러 보며 구경할 만한 정도는 되었다.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있었는데 다육식물,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고무나무로 통칭하는 무화과나무속(ficus)의 식물들이 특히 많이 보였다. 벵갈 고무나무, 떡갈 고무나무, 벤자민 고무나무 등이 모두 무화과나무속에 속한다. 이 중에서 우리의 마음에 든 것은 '하와이골드'라는 품종명이 달린 벤자민 고무나무였다. 색이 연하고 다채로운 것이 이목을 끌었다. 우리는 벤자민 고무나무 하나를 고르고 골라 차량 뒷자석에 실었다.
2.
아내와 나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꽃이 피지 않는데도 열매가 열리는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흔치 않은 주제였던 만큼 대화는 장소를 바꿔 집에서도 계속 되었다.
고무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데도 열매가 맺힌다. 꽃이 피지 않는다는 건 무화과나무속에 속한 식물들의 공통점이다. 이름 '무화과'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고무나무도 꽃을 피운다. 꽃이 보이지 않는데도 열매를 맺어 '무화과'란 이름을 얻었지만 꽃은 겉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고무나무처럼 무화과나무속에 속한 식물들은 꽃이 동그란 꽃받침 안쪽에서 열린다. 꽃이 뒤집혀 있는 형상이다. 이처럼 무화과나무속의 대표적인 식물 중 하나인 무화과나무의 꽃들은 타원형의 꽃받침 안쪽에서 피니, 이 꽃의 집합체가 자라면 우리가 먹는 무화과 열매가 된다.
3.
우리의 대화 주제는 이들이 어떻게 수분을 하는지로 옮겨갔다. 꽃이 겉에서 안 보이는데 어떻게 수분을 하는가? 일단 자화수분을 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역시 이들은 자화수분을 했다. 특히 우리가 식용으로 쉽게 구하는 품종이 그랬다.
그런데 곤충을 이용해 이화수분을 하는 충매화 계열도 있었다. 14세기 터기의 수도였던 부르사는 무화과 열매로 유명한데, 이곳의 야생종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말벌'이라는 곤충의 도움을 받아 수분을 한다. 아직 먹어본 적은 없지만 '스미르나 계(Smyrna type fig)'에 속한 이곳의 무화과는 맛이 매우 훌륭하다고 하니 터키를 여행할 일이 생기면 찾아가 음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스미르나 계의 무화과에 열매가 맺게 해주는 무화과벌레와 무화과나무의 공생 관계는 매우 독특하여 자연의 신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4.
인터넷에서 고무나무를 검색하면 고무나무에 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꽃이 피었다고 쓴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들은 꽃이 핀 어떤 나무를 고무나무로 오해하고 있었다. 잎의 형태가 벵갈 고무나무처럼 타원형으로 길쭉하고 표면에 광택이 있으면 고무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산목과 돈나무를 고무나무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다육식물인 염자를 보고도 고무나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태산목과 돈나무, 염자에 꽃이 피면 "고무나무에 꽃이 폈어요!" 하며 놀라워했다. 녹보수는 우리가 이번엔 구입한 벤자민 고무나무로 둔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벤자민 고무나무에 꽃이 피었다며 좋아하는 글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은 녹보수의 꽃이었데도 말이다.
인터넷에 이런 글들이 많다 보니 고무나무도 정성 들여 키우면 일반적인 '그'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믿음이 심심찮게 퍼져 있다. 인간이 지닌 이 '믿음'이라는 태도에는 종교적으로도, 그리고 인식론적으로도 참으로 놀라우며 신비로운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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