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자생하는 수조 속 생명체들과 옐로우 레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8. 9. 00:34

본문

수조를 거의 방치 상태로 놔둔지 두 해가 다 되어가고 있다. 가장 기본이라는 물갈이조차 하지 않은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관리가 어려운 장비를 빼버린지는 더 오래되었다. 수조에 스키머도 없고 양말 필터도 없다. 하는 일이라곤 보충수통을 채워주고 온도를 맞춰주고 가끔 먹이를 주는 것뿐. 그러다 보니 연산호조차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려 이제 남아 있는 산호는 얼마 없는 상태이다.


그래도 생명은 살아간다. 2013년부터 함께 생활한 흰동가리는 이제 곧 여섯살이 된다. 발코니에 있는 게발선인장을 빼면 우리집에서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예상치 못했던 생명체들도 살아간다. 가장 번성하고 있는 건 갯지렁이들이다. 갯지렁이들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아마도 염도가 다소 낮고 질산염이 다량으로 존재하는 환경)이 되어버린 것 같다. 분류학상으로 환형동물문, 다모강에 속하는 이 생물들은 낮이건 밤이건 먹이 활동에 열심이다. 수조를 보면 이들이 살아가는 석회질의 관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 수조뿐만 아니라 빛이 없는 섬프 수조에서도 꽤 자라고 있으니 이들의 성장엔 빛이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닌 듯하다. 다만 오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끼가 낀 데다가 입구까지 막혀버린 석회관들이 꽤 많은데, 그것 못지 않게 많은 석회관들이 갯지렁이들의 집으로 쓰이고 있었다.


갯지렁이 중에서도 석회관 갯지렁이는 구경하기에 좋은 편이다. 석회관 밖으로 쭉 내민 몸이 어떻게 보면 꽃처럼 보이기도 하기에 관상용으로 썩 나쁘지 않다. 코코웜보다야 못하지만 자세히 보면 무늬도 있어서 이 '히치하이커'들이 싫지만은 않다.


석회관 갯지렁이. 2018. 8. 8.




실타래 갯지렁이는 보기에 썩 좋지는 않다. 이들은 석회관 갯지렁이와는 달리 아주 기다란 촉수를 한 두개씩만 내밀고 있어서 그 모습이 꼭 벌레를, 특히 촌충 같은 벌레를 연상시키고 만다. 수조의 유리벽 안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석회관 위로 촉수를 내밀고 있는 실타래 갯지렁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타래 갯지렁이. 2018. 8. 8.




극피동물도 꽤 번성하고 있는데 거미불가사리가 대표적이다.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자석으로 수조벽을 청소할 때마다 근처에 숨어 있다가 도망치는 거미불가사리를 꼭 한두 마리씩은 볼 수 있었다. 본 수조에서 섬프로 넘어간 거미불가사리도 제법 되는 것 같다. 거미불가사리는 부패한 고기와 유기물을 먹고 사는데, 그만큼 내 수조의 수질이 안 좋다는 방증일 것이다.


산호처럼 보이는 게 있기도 했다. 얼핏보면 파이프오르간 산호를 닮았는데 자세히 보면 군집을 이룬 석회관 갯지렁이처럼 보인다. 갯지렁이와의 차이점이라면 끝부분이 마치 광합성을 하듯 형광으로 빛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몸체 끝에 털처럼 나와 있는 것들이 폴립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갯지렁이라면 환형동물문에 속하겠지만 산호류라면 강장동물, 즉 자포동물문에 속하는 생명체일 것이다.


이름 모를 생명체. 해파리가 뒤집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환형동물문에 속하지는 않을 것 같다. 2018. 8. 8.




예전엔 강장동물이라 했던 것을 지금은 자포동물과 유즐동물로 분리해서 설명한다. 나도 학창시절엔 강장동물이라 배웠었지만 이제 강장동물문이란 용어는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예전엔 내장의 형태가 단순하고 자포가 있는 일군의 생명체들을 '빈 강'자에 '창자 장'을 써서 강장동물이라 했는데, 후에 강장이면서 자포가 없는 동물이 발견되어서 자포동물문과 유즐동물문으로 분리가 되었다. 자포동물과 유즐동물은 모두 강장을 가지고 있지만 자포동물과 다르게 유즐동물은 자포가 없다. 자포동물은 이름 그대로 자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자포엔 한자 뜻대로('찌를 자', '세포 포') 따가운 침이 있어 먹이를 사냥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산호와 말미잘도 자포동물문에 속하지만 따가운 촉수가 인간에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산호의 촉수는 사람이 건들면 오히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자포동물문에 속한 동물 중 인간에게 위험한 독침을 가지고 있는 건 해파리다.


몬티포라처럼 보이는 것도 자라고 있다. 하지만 경산호 중에서도 키우기가 쉽지 않은 몬티포라가 저 혼자 자생할 리가 없다. 그러니 석회조류일 것이다. 몬티처럼 옆으로 자라는 것이 특이하기는 하다. 하나는 수류모터에 붙어서 커다랗게 판처럼 자라고 있고, 다른 하나는 조그마한 부채꼴로 군집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수류모터에서 번식 중인 석회조류. 2018. 8. 8.


바닥에서 번식 중인 석회조류. 2018. 8. 8.




이외에도 엄청난 양의 옆새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점처럼 작은 생물들이 넘쳐난다. 가끔은 이 이름 모를 생물들이 저 스스로 태어나 살아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두렵게 느껴졌다. 이렇게 계속 가만히 놔두면 이 기이한 생물들로 수조가 가득 차게 되지는 않을지? 생태계는 균형을 좋아하지만 이 작은 생태계는 자연스러운 균형 상태에서 예외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작은 수조에는 최상위 포식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수조 속에서 살고 있는 가장 상위 종이자 유일한 어류인 흰동가리는 오로지 사료만을 먹고 있기에 자신의 배설물을 내보내는 것 외에는 수조 생태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질 수 없었다. 그래서 작은 생명체들을 먹고 사는 육식성의 옐로우 레스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들이 방치된 이 작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옐로우 레스. 나머지 한 마리는 바닥의 모래를 파고 들어가더니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018. 8. 8.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