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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클레 기법으로 인쇄한 샤갈의 그림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8. 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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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클레 기법으로 인쇄한 샤갈의 그림들. 서울시 서초동, 2018. 8. 1.


며칠 전에 방문했던 한가람 미술관 3층 복도에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 중인 모든 샤갈의 작품들은 촬영조차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복도에 전시 중인 이 작품들이 진품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각 액자 옆에는 작은 글씨로 각 작품의 제목과 가격이 적혀 있었다. 200점만 한정 판매한다는 이 작품들은  '지끌레' 방식으로 구현된 '판화'로, 구매자에게는 판화보증서까지 제공해준다는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지끌레 기법을 이용한 샤갈의 판화라고 하니 구매 의욕이 생길만 하다. 가격도 65만원이라니 샤갈의 명성에 비하면 저렴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끌레 기법을 이용한 판화'라는 설명을 21세기 전산 용어로 바꾸면 구매 의욕이 줄어들 것이다. 어쨌거나 이들은 디지털 사진기로 촬영한 사본을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한 21세기의 복제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로 생성하여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했다는 설명 대신 지끌레라는 신조어와 판화라는 용어로 이들을 수식하자 왠지 모를 격조가 그림에서 뿜어 나오는 듯했다. 이제 원본을 전시하기 힘든 소규모의 저예산 전시관에서는 지끌레 방식으로 인쇄한 그림들을 원본 대신 전시하기에 이르렀으니 신조어의 유익함이란 이와 같다. 그 용어가 지끌레 같은 프랑스어일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지클레'가 아니다. 물론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지클레가 맞지만 지클레라고 하면 특유의 매력이 사라져 버린다. 자, 우아하게 발음해보자. 쥐끄을레에.


나도 그 우아함에 이끌려 작품을 하나 사려고 했다. 차라리 원본을 사라는 아내의 한 마디로 주술에서 풀려나기 전까지는.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내 손에는 액자에 담긴 커다란 판화가 아니라 샤갈의 그림을 그려 넣은 작은 엽서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 엽서도 어딘가에 걸어 놓으면 제법 멋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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