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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되기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8. 2. 14.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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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요사이 지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응원을 받게 되었고, 장난이든 아니든 구의원에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지금껏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나이지만, 내가 이렇게 지역 사회의 일에 관심이 많다면 한 4년 정도 정치권에서 일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일이 권리가 아니라 의무가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 더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연인끼리의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잘 모르는 사람이 도와줄 때는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하다가, 그 사람이 연인이 되고 나면 작은 도움은 당연시 여기게 되고, 간혹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했다며 분노해 버린다. 보다 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들의 그러한 분노를 이기심의 발로라 지적하거나 당장 고치려 들지 말고, 더 보살핌 받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우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정치인 역시 존경 받는 위치에 다다르고자 한다면 응당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일들을 감수할 의지가 있느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실천적 정치적 삶과 순수 관조적 삶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가"를 논하고 나서 내렸던 결론처럼 나는 순수 관조적 삶에 보다 더 끌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정치에 관여하더라도 '정치적 삶'과는 거리를 두고자 했다.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를 구분한 바에 따르면 '부업 정치가' 정도에서 머무르고 싶어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 '거리 유지'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정치를 대립과 분쟁을 조정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활동이라 볼 때 난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행하는 활동보다는 단기적인 힘에서 약할지 모르나 그 생명력과 향기만큼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또 다른 방식. 그렇게 보자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정치인이 되기를 희망했던 셈이다.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는 자크 랑시에르의 주장은 지금의 나에게 조금도 헛되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의 감각 체계와 '불화'를 일으켜 새로운 감성적 '분배'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또 다른 형태의 정치가가 바로 그곳, 저기에 서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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