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시리즈 중 제3권이 지난 달 출간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방대한 기획 작품이 예정대로 번역되고 출간되어 기쁜 마음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역자의 노력과 인내가 책을 잠시만 들여다 보아도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러나 지난번의 <중세> 1, 2권과 마찬가지로 <중세> 3권에도 몇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어 이곳에 간단하게 나열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중세> 3권의 서문 전체를 다루려 했으나 시간상 문제로 서문의 첫 부분부터 4쪽에 해당하는 아주 일부분으로 한정하여 적었다.
1. 십자군의 횟수
<중세> 3권 서문의 첫 쪽을 보면 제5차, 제6차, 제7차 십자군이 각각 1217년, 1248-1254년, 1270년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16쪽). 그러나 우리나라는 물론 영어권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은 이와 다르다. 대표적으로 1248-1254년에 일어났던 십자군 전쟁을 국내에선 보통 제6차가 아닌 제7차 십자군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십자군의 출정 기록이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특히 민중 십자군과 소년 십자군의 포함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 서문의 해당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2. 보름스 협약의 시기
책 17쪽을 보면 "1222년에 교황이 보름스 협약을 통해 (...) 황제의 주교 임명권을 빼앗아 오는 데 성공"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문제는 보름스 협약이 있었던 시기다. <중세> 3권은 그 시기를 1222년이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보름스 협약은 일반적으로 1122년, 즉 책에 써 있는 것보다 100년 앞선 시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한 오타 문제로 보인다. 즉 1122년을 1222년으로 잘못 표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탈리아 원서에서도 해당 부분을 1222년으로 명시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Umberto Eco, Il medioevo 3 (Encyclomedia)
위 텍스트 이미지는 이탈리아어 <중세> 3권의 인터넷본을 그대로 스크랩한 것이다. 보름스 협약(il concordato di Worms)이 1222년에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혹시 1222년에 보름스 협약이 실제로 체결되었던 건 아닐까?
보름스 협약이 여러 차례 진행된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으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옥스퍼드 레퍼런스 등 어떤 문서에서도 보름스 협약과 1222년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한글 문서뿐만 아니라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문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름스 협약이 1222년에 체결되었다고 서술한 극히 일부의 문서가 있긴 하였다. 하지만 그 문서들은 모두 일부 사실을 잘못 기술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볼페르트가 쓴 <교황사전>(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을 보면 보름스 협약이 최종적으로 1222년에 합의되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그 문서는 협약 당시의 황제가 하인리히 5세라는 언급을 같이 하고 있다. 하인리히 5세는 1125년에 사망했으므로 1222년의 회의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볼 때 보름스 협약은 1122년에 이루어진 게 맞는 듯하다. 이 부분은 원서의 오타에서 비롯한 문제로 봐야겠다.
* 사실 이 문제가 이탈리아 원서의 오타 탓이라는 것은 책 자체에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책의 19쪽에 "1212년 12월 9일에 독일 왕으로 등극한 프리드리히 2세가 과거 보름스 협약에서 (...)"라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 1222년은 1212년의 과거가 될 수 없다.
3. 보름스 협약의 내용
앞서 보름스 협약을 언급할 때 "보름스 협약을 통해 (...) 황제의 주교 임명권을 빼앗아 오는 데 성공"(17쪽)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이듬해에는 에게르의 교황 칙서에 근거하여 과거 보름스 협약에서 황제에게 부여되었던 주교와 수도원장의 임명권을 교황에게 양도했다."(19쪽)
어떻게 잘 해석을 해보려고 해도 위 두 문장의 내용은 서로 배치된다. 17쪽에서는 보름스 협약을 통해 황제의 주교 임명권을 빼앗았다고 하고, 19쪽에서는 보름스 협약에서 주교와 수도원장의 임명권이 황제에게 부여되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후자의 설명이 잘못되었다. 보름스 협약 당시, 서임권이 완전하게 교황쪽으로 넘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주교의 서임권이 황제에게서 교황쪽으로 상당 부분 이양된 것은 사실이다. 번역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스럽다. 이탈리아어판 <중세3>권에는 해당 부분이 "dei residui diritti nelle elezioni", 즉 황제에게 남아 있던 "주교 서임권에 대한 잔여 권리"가 교황에게 넘어갔다고 명확하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보름스 협약 이후에 황제에게 일부 남아 있던 주교 임명권을 교황에게 넘긴 것과, 보름스 협약에서 황제에게 부여되었던 주교 임명권을 교황에게 넘긴 것은 보름스 협약의 내용을 상당히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4. 몽포르의 시몽의 정체
다음은 번역 문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장 형태의 한 예이다.
"옥스퍼드 법령에서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한 십자군에 승리한 몽포르의 시몽(약 1150-1218)의 아들은 헨리3세에게 15명의 봉건 영주를 자문위원과 행정통제관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18쪽)
번역 문서를 읽기 어려운 이유는 위와 같은 문장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두꺼운 전공 번역서를 읽을 때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런 책은 대개 번역 분량이 너무 많아 문장을 정리하는 데까지 시간을 들이기 쉽지 않고, 또 책의 성격상 사실의 전달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번역 수준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위 문장을 들고 나온 이유는 번역이 아니라 적시하고 있는 사실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위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이 가능하다.
가.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한 십자군" ->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하여 싸운 십자군이 있다.
나.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한 십자군에 승리한 몽포르의 시몽" ->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하여 싸운 십자군을 몽포르의 시몽이 무찔렀다. 즉 시몽이 십자군을 무찔렀다.
다.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한 십자군에 승리한 몽포르의 시몽의 아들" ->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한 십자군을 몽포르의 시몽이 무찔렀는데, 바로 그 사람의 아들
라.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한 십자군에 승리한 몽포르의 시몽의 아들은 헨리 3세에게 (...) 요구했다." ->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하여 싸운 십자군을 몽포르의 시몽이 무찔렀는데,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 헨리 3세에게 (...) 요구했다.
사실 위 문장만을 놓고 보면, 십자군에 승리한 것이 시몽인지, 아니면 그 시몽의 아들인지 확실한 구분이 불가능하다. 사전 지식이 있어야만 해당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사전 지식이 있는 것으로 가정해 보자(그렇지 않으면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우선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는 '옥스퍼드 법령에서'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할 수 있다.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하여 싸운 십자군이 있는데, 이 십자군을 몽포르의 시몽이 무찔렀다.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 헨리 3세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 이제 옥스퍼드 법령이라는 단어를 포함시키면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가 가능하다.
"이단인 알비파에 대항하여 싸운 십자군이 있는데, 이 십자군을 몽포르의 시몽이 무찔렀다. 그 사람의 아들은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적은 옥스퍼드 법령을 헨리 3세에게 내밀며 이를 승인하라고 요구했다."
어렵사리 해석을 했지만 이 문장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우선 이탈리아 원문에는 '십자군'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번역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십자군이라는 단어를 넣은 듯하다. 하지만 그 단어가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이단인 알비파를 척결하기 위해 십자군(일명 '알비 십자군')이 조성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십자군의 총사령관이 바로 몽포르의 시몽이기 때문이다. 즉 몽포르의 시몽이 십자군을 무찌른 게 아니다. 몽포르의 시몽은 알비 십자군을 이끌고 이단인 카타리파(알비파라고도 하지만 대개 '카타리파'라고 한다)를 학살한 사람이다.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 헨리 3세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몽포르의 시몽은 일반적으로 시몽 드 몽포르라고 부르며, 그 아들과 구분하기 위해 대(大) 시몽 드 몽포르라고 한다. 그의 아들은 소(小) 시몽 드 몽포르라고 하는데, 이 작은 시몽 드 몽포르는 의회(하원)를 최초로 소집한 것으로 영국사에서 제법 유명한 인물이다. 서양사에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이름인 시몽 드 몽포르를 적고 그 옆에 (이름이 동일하기 때문에) 생몰년을 적어둔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아들과 구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시몽 드 몽포르라고 하면 의회를 소집한 시몽 드 몽포르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면 혼동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십자군에 승리한 몽포르의 시몽의 아들"이라고 하는 바람에 정확하게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중세> 1권부터 3권을 쭉 보건데 움베르토 에코의 이 시리즈는 앞으로 적지 않은 양의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한 권에 8만원, 2년 뒤 출간 예정인 제4권까지 포함하면 총 32만원에 달하는 이 책을 초판에 이어 개정판까지 모두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스럽다. 만일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면 거기엔 초판을 구매한 사람들의 덕도 일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따라서 훗날 초판 구매자를 위해 개정된 내용의 일부 중요한 부분만이라도 따로 공개를 해준다면 어떨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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