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두오모였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 덕택에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이 성당은 연인들이 등장하는 그 영화의 애뜻한 내용 때문에 우리 역시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로, 번역하면 '꽃의 성 마리아'란 이름의 성당이었다. 지도를 참고하며 중앙시장에서 두오모를 향해 걸어가자 골목길의 사이사이로 두오모의 그 유명한 돔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의 기대는 그만큼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두오모의 돔은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으니, 두오모는 넓은 광장에 서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던 로마의 산 피에트로 성당이나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성당의 정면에 위치한 광장에 도착했음에도 브루넬레스키의 유명한 팔각 돔은 성당 정면에선 거의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좌우 측면에서도 온전히 보이지 않았다. 광장은 좁았고 그 주변으로 다른 건물들이 바짝 들어차 있어서 가까이에선 돔을 포함한 성당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조망할 수 없었다.
두오모의 돔은 영화에서 연인들이 약속을 다짐하는 곳으로 등장했고, 그래서 많은 연인들이 두오모의 돔에 올라가기를 희망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그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결코 밝지 않았고 결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두오모의 이 거대한 돔에 올라가 보지 않은 것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기줄이 길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빗나간 사랑이라는 슬픈 줄거리를 지닌 영화의 내용을 따라 돔을 더듬어 올라가야 할 적당한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산 로렌초 성당과 부속 박물관을 방문하였고, 오후 늦게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 가톨릭 공동체 주최의 콘서트를 구경하였다. 여러 작은 성당도 둘러보았다. 저녁 즈음엔 베키오 다리를 건너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마치 두오모의 돔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피렌체 시내를 조망할 예정이었으니 두오모의 꼭대기에 오르지 않을 이유는 참 여럿이었다. 나는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그 영화가 전하는 슬픈 기운을 피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의 궂은 운명을 그런 식으로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채 바라보아야만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그 돔의 전체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은유도 그 당시 우리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꽃의 성 마리아'라는 성당의 이름 역시 우리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예수를 상징하기도 하는 꽃이란 단어는 당시 나에겐 그저 플로렌스의 이명이었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된 예수의 부활 역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일 뿐이었다. 게다가 아주 실리적인 이유, 즉 두오모의 돔 안쪽에 그려넣은 바사리의 '최후의 심판'을 보지 못했다는 미련마저 날 붙잡으며 괴롭히곤 했다. 1
산 로렌초 성당에서 열렸던 이탈리아 내 한국 가톨릭 공동체의 공연은 그날 단 하루뿐이었으므로 그 관람은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우연한 공연의 제목은 "Secondo verita nella carita", 해석하면 '사랑의 진실을 따라서'였다. 도시와 건축, 음악에 이르기까지, 상징과 우연의 선물이 일관되게 전해 주고자 했던 것들의 의미는 명백했다. 하지만 그 많은 의미 안을 쏘다니며 내가 응시했던 것은 중세인들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양면성의 다른 측면, 즉 성당의 더러운 외벽, 금세 지는 꽃, 반복적 선율의 지루함이었다. 브루넬레스키가 회화에서 완성시킨 원근법의 재현으로 중세 사람들은 비례라는 이상적인 미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되었지만 그때 내가 피렌체에서 견지한 태도는 내 스스로 조화와 비례의 반대편에 있다고 믿는 것들에 보낸 의심의 눈초리가 전부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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