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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용 대나무, 진죽과 계죽의 올바른 표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11. 3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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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도는 검도를 할 때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 '대나무 칼'이라는 뜻처럼 대나무를 이용해 만들어 검의 대용으로 사용한다. 죽도는 대나무를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대나무의 종류에 따라 구분을 하기도 하는데, 국내 검도인들은 죽도에 사용하는 대나무를 크게 '진죽'과 '계죽'으로 나눈다. 이때 통상적으로 진죽은 일본산 대나무를, 계죽은 중국산 대나무를 의미하는 데 쓰인다. 검도를 할 때엔 그 정도 구분만으로 충분하겠지만 실은 그런 구분을 명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계죽이라 불리는 대나무의 종류가 상당히 많으며, 일본산 대나무가 모두 진죽은 아닌데다가 진죽이라는 이름 또한 우리나라의 정식 명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도인들이 통상적으로 '일본산 대나무'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진죽'은 우리나라의 '왕대'와 같은 것이다. 즉 이 대나무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다. 왕대라는 표준 국명은 1943년에 <조선삼림식물도설>을 쓴 정태현 박사[각주:1]에 의해 처음 정해진 것으로, 한자 '왕[王]'과 '가늘고 긴 막대'를 뜻하는 순 우리말 '대'를 합한 것[각주:2]이다. 대나무나 식물을 다루는 국내 서적 중에 왕대 대신에 진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2005년에 발간한 <대나무의 모든 것>을 보면 "쓰임새가 많다고 하여 진죽[眞竹]이라고 한다"[각주:3]라고 쓴 부분이 있으나 이 역시 별칭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진죽이라고 하면 보통은 묽은 죽을 뜻한다.

 

일본인들은 왕대를 '真竹'이라 쓰고 이를 훈독하여 '마다케'라고 발음한다. 여기서 일본어 '다케'는 우리말 '대'와 상통한다. 국내 검도인들이 사용하는 검도 용어 중 일본 한자를 우리 한자음대로 발음한 것이 적지 않으므로(과거, 도쿄를 동경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진죽이라는 표현 역시 일본어 '真竹'를 우리 한자음대로 읽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 '真竹'를 한자음으로 읽으면 '진죽'이 된다. 왕대를 '참대'라고 일컫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 역시 일본식 표현인 진죽의 '진'을 풀이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왕대를 가리켜 흔히 '계죽[桂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 나라에서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우리나라의 왕대와 일본의 마다케(진죽), 그리고 중국의 계죽은 실상 같은 종의 대나무인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죽도로 사용하기에 진죽이 좋고 계죽은 그보다 질이 떨어진다"라는 통상적인 분류는ㅡ마치 종 자체가 다른 것처럼 구분하고 있으므로ㅡ잘못된 것이 된다. 

 

또한 같은 종의 대나무라 하더라도 중국산에 비해 일본산 및 대만산 대나무가 더 좋다는 믿음이 퍼져 있는데, 이런 주장을 일반화하기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편이다. 일본이라는 무도 선진국을 향한 심리적 호감이 대나무와 죽도의 호평에도 영향을 주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종이라 해도 기후나 토양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건 분명한 사실이나 이에 대한 보다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의 오월계죽(좌)과 대만계죽(우). 오월계죽은 우리나라의 왕대 및 일본의 마다케(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진죽')와 같은 종이다.

 

2.

중국에서 왕대를 가리켜 계죽이라 부른다고 했지만 한 종의 대나무를 특정하고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서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있는 강죽속의 대나무 종이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중국에서는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대나무를 계죽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왕대와 일본의 마다케(진죽)가 중국의 계죽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각주:4]

 

국내 검도인들이 중국산 대나무를 가리킬 때 쓰는 계죽의 정확한 명칭은 (중국의 분류를 따르면) '대만계죽[臺灣桂竹][각주:5]'이며, 우리나라의 왕대와 일본의 마다케(진죽)는 중국 사람들이 '오월계죽[五月季竹][각주:6]'이라 부는 종과 같다.[각주:7] 중국에서도 대만계죽과 오월계죽을 통상 계죽이라 별칭하고 있지만, 실은 (앞의 한자 표기에서 보이듯) '계'의 한자가 다르기 때문에 계죽이라고만 해도 이 둘의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한자를 병기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계죽이라고만 하면 국내의 왕대 혹은 일본의 마다케(진죽)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대만계죽을 가리키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만일 오월계죽으로는 절대 죽도를 만들지 않는다면 대만계죽을 지칭하기 위해 단순히 계죽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굳이 그런 가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이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좀 더 명확한 용어를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桜'라고 적고 '사쿠라'라 훈독한다. 우리가 벚꽃이라는 우리 단어를 놔두고 '桜'의 한자음을 읽어 '앵'이라고 발음한다면 어색할 것이다. 일본 전문용어를 비롯한 외국어 전문용어를 한글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같은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 중인 단어가 있다면 변화를 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1.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의 효시로 불리는 학자로 1912년을 전후로 제주도부터 백두산까지 우리나라 곳곳을 돌며 한국식물분류학의 체계를 세웠다. [본문으로]
  2. 참고자료: "한국식물생태보감 1"(김종원 지음. 자연과생태 2013) [본문으로]
  3. 국립산림과학원 발행, "대나무의 모든 것" (웃고문화사 2005), 22쪽 [본문으로]
  4. [본문으로]
  5. 학명: Phyllostachys makinoi Hayata. 별명: 면죽(棉竹), 루죽( 竹, 복건성), 계죽(桂竹, 대만), 계죽자(桂竹仔, 종자식물 명칭) [본문으로]
  6. 학명: Phyllostachys bambusoides Sieb. et Zucc. 별명: 강죽(剛竹, 중국 식물 도설), 고죽(苦竹, 식물 명칭 모음), 대죽(臺竹), 귀각죽(鬼 角竹, 죽보 상세 수록) 등 [본문으로]
  7. 참고자료: 국립산림과학원 발행, "중국 대나무 도감 1" (웃고문화사 2009), 139, 15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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