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한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는 검도 호구를 수리하기 위해 호구 제작사를 찾아갔다. 내 호구의 제작사는 국내의 오래된 검도 장비 업체인 세현상사였다. 서울에도 세현상사가 있지만 본점은 광명시에 위치해 있어서 수리를 위해선 이곳으로 호구를 보내야 했다. 택배로 보낼까 하다가 구경도 하고 필요한 설명도 직접 하는 게 좋을 듯 하여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세현상사는 국내 검도계에선 중견 기업이라고 할 만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일본 교토의 토잔도(일본의 검도 장비 업체)처럼 호구 전용 쇼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구경할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접 볼 수 있는 호구나 죽도, 액세서리가 많지 않았다. 건물 2층과 3층에 더 많은 장비와 액세서리가 있다고 했지만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걸 말하면 그것만 꺼내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특정한 어떤 물건을 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고 또 바쁜 직원분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1층에 있는 몇 가지 장비를 둘러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원래 목적도 호구 수리였지, 장비 구경이 아니었으므로.
세현상사에서 공간을 멋지게 꾸미지 않고 있는 건 부지의 위치 때문이었다. 현재 세현상사가 위치한 곳은 재정비촉진지구였기에 내부 투자를 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곧 회사 건물을 이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위치까지 다 정해진 상태여서 조만간 옮길 것이라 하였는데,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멋지게 꾸며서 호구 업체의 영세한 이미지를 벗어낼 계획이라고 했다. 부천쪽으로 이전할 것이라 하니, 기왕이면 세현상사 역시 일본의 검도 무구점들처럼 외국인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래도 당장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사무실 한 쪽에 재봉틀(대부분 '미싱'으로 표현)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는 호구 세트가 몇 개 전시되어 있었다. 손을 대선 안 된다는 언급은 없었지만 진열된 상품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눈으로만 구경을 했다. 그런데 모처럼의 방문에 볼거리가 몇 개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드셨는지, 내년에 출시 예정이라는 면금(멘가네)과 도복을 보여 주셔서 직접 만져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세현에서 곧 출시 예정이라는 면금은 기존의 IBB 제품군과 마찬가지로 'Ideal Best Balance(IBB)' 기술을 바탕으로 면금에 몇 가지 보완처리를 한 것이었다. 사실 보여 주신 것과 거의 (사실상) 동일한 기능을 지닌 면금이 일본에 이미 출시된 상태였는데, 국내엔 그 면금이 덜 알려졌을뿐더러 그 면금을 적용한 호면이 (아마도)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곧 깜짝 공개를 할 예정'이라고 표현하신 듯했다. 어쩌면 약간 다른 제품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다양한 제품에 목마른 국내 사용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될 건 분명해 보였다. 도복 역시 기능성 도복과 만번 도복의 장점을 모두 고려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제품이었다. 신제품에 관해선 일종의 보도 시점 유예(엠바고)를 걸어 두셨기 때문에 더 자세히 쓰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방문의 주목적이었던 호구 수리는 호면의 날개 길이를 줄인 뒤 호면, 갑상, 호완을 전체적으로 염색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턱 부분도 교체하고 싶었지만 턱, 그러니까 찌름 부위 교체를 위해선 호면을 재조립해야 하는 관계로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여 그만 두었다. 호면 자체는 틀어지지 않았기에 굳이 턱 부위 교체 때문에 재조립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올이 나간 갑과 갑상의 실 장식 1 처리나 호완 바닥 수리, 면금을 고정시키는 소가죽 부분 2의 칠 등은 무상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10년 전 호구를 살 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A/S가 지금 이렇게 보니 무척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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