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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03. 9. 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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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의 닮은꼴을 소설 속에서 발견한다. 그는 '에밀 싱클레어'다. 약한 자아관념이 외부 세계와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약간의 자폐증을 보이는, 세상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 나에게 없는 것은 그에게도 없었다. 그건 확고한 자아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지만, 확고한 자아와 결단력이 없기에 방황하며 살게 되는 사람.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과 보편성, 나는 보통 그를 거부하지만 때론 어쩔 수 없이 그를 받아들인다. 사회적인 관념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 이기적인 공동체가 아닌 홀가분한 나를 위해 살고 싶은 희망. 하지만 '사람이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순 없어'라는 말 앞에 나는 다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아니, 때론 나 스스로 그 사회 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도피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불완전한 나의 자아 때문에 난 스스로를 해방시키지도, 어딘가로 구속시키지도 못했다. 난 머지않아 이 답답한 고리가 어느 쪽으로든 끊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어쩌면 이제 나도 만들어진 틀 속에 안주하기를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인생이라며,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떠밀리며, 노를 젓길 포기한 채 그저 물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길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노마저 강물 위에 던져버리는 순간 아마 난 이렇게 자조할 것이다. 왜 꼭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 거지? 난 그냥 이 따뜻한 알 속에 숨어있고 싶어. 잘있어, 나의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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