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얘기하면, 이 책은 지은이가 "유럽 기행" 과정에 보고 느낀, 서양 미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럽 기행이라는 단어를 왜 강조했느냐 하면, 어쩌면 미술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 책을 볼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결코 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술사에 관련된 내용이란 최소한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정도는 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면 안 된다. 서양 미술사에 대한 지적 교양을 쌓길 원하는 사람들도 보면 안 된다. 그림이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보면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독자들이 서양 미술사에 대한 지식을 쌓게 하기 위해 만든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기본적으로 여행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수필이다. 수필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중점이 된다. 그러므로, 서양 미술에 대한 지은이의 객관적인 시각을 원하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이 책은 회화와 조각에 대한 지은이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으로 채워져 있다(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난 이 책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서양 미술사에 대한 어떤 커다란 기대를 하는 사람은 이 책을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실망할 것이다. 지은이는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느낌 없었다"라고 말하곤 넘어가버린다. 이런 모습은 분명 어떤 이들에겐 실망이다. 하지만 지은이의 시선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회화와 조각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 거장의 작품을 보면서 이게 왜 예술인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사람, 회화와 조각, 예술과 삶 속에서 우울을 느끼고 싶은 사람, 여행의 묘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 최영미라는 독자적인 한 인간의 감성을 알고 싶은 사람에겐 매우 귀중한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저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얻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하겠다.
여기에 옮겨 적느라 책이 간행된 날짜를 보았다. 1997년이었다. 이제보니 이 책이 나온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빳빳하고 하얗던 종이의 윗부분이 자신의 원래 태생인 나무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 했더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지난 것이었다. 책과 함께 내가 바래간다는 느낌이 이토록 좋다니. 아마 그건 그저 책이라서가 아니라, 최영미 씨의 시대의 우울이란 책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 느낌을 공유할 수만 있다면, 난 언제까지고 이 책을 좋은 여행기로 기억할 것이다.
최영미 지음, 『시대의 우울』(창비, 1997)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자가 담배 피운다고 수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었던 것이다. 내겐 최초의 유럽여행인데다 첫 기착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긴장되기는커녕 안도감과 해방감이 밀려들었다.
7p
200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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