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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사라지지 않는 고독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06. 8.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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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렇게 기다릴 수가 없소. 우리 다음달에 결혼식을 올립시다」 아마란따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손길에도 떨지 않았다. 그리고 미끈미끈한 작은 동물처럼 손을 빼내더니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끄레스삐」 아마란따가 미소를 지었다. 「난 죽어도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요」
삐에뜨로 끄레스삐는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절망한 나머지 손가락을 거의 부러뜨릴 듯이 쥐어짜며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음으로 호소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시간 허비하지 말아요. 당신이 정말로 나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다시는 집안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요」 아마란따가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 삐에뜨로 끄레스삐는 그 불협화음을 이루는 음악회 한가운데서 면도날로 팔 동맥을 끊은 후 두 손을 안식향 대야에 담근 채 가게 뒷방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각주:1]


처음에 아마란따는 삐에뜨로 끄레스삐를 너무나도 사랑했었다.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약혼자였던 레베까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어쩌면 삐에뜨로 끄레스삐를 향한 아마란따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를 차지하고 싶어했던 마음만큼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최후에 가서, 아마란따는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청혼을 거절하고 말았다. 삐에뜨로 끄레스삐가 처음부터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어서였는지, 자신 때문에 레베까 죽어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자신은 누군가를 사랑해서도 안되고, 사랑 받을 자격도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는지,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사랑을 의심해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이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그녀의 청혼 거절의 이유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비록 우르술라가 그 이유를 추측하긴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거절을 했고, 결국 삐에뜨로 끄레스삐는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난 그곳에 일종의 교훈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어떻게 해서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가 하는 걸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너무 깊게 생각하거나 혹은 너무 간단하게 생각할 때, 사랑을 할 때 육체적 매력만을 내세우거나 혹은 너무 정신적인 면만을 내세울 때, 사랑을 할 때 기다림을 미덕으로 여기거나 너무 열정만을 내세울 때, 그럴 때 사랑이 비극이 시작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처음 다가온 사랑에 헌신적이지 않을 때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 힘에 의해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인연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해당할 수도 있고 그 어느것도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의문투성이에서 분명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것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결국은 모두 고독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마르케스 씨의 글에서 다시 고독을 발견한다. 마르케스 씨를 말하면 떠올려지곤 하는 재미와 환상이 아니라, 뿌옇게 쌓인 먼지와 공허를 그의 글에서 묻어냈다. 한때 총명하고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많은 사람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야심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애써 이룩해 놓은 것들은 모두 잊혀져버렸다. 한때 고도(古都)가 누렸던 영광은 바래고 바래져, 이제 한쪽 구석에 굴러다니는 잿빛 기둥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세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어쩌면 그의 책 속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마을이 채 일년도 되지 않아 많이 퇴락해 버린 것에 놀라워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편도나무의 잎들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파란색 칠을 했다가 다시 붉은색 칠을 하고 또다시 파란색 칠을 한 집들은 이제 무슨 색깔인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무얼 바랐었니?」 우르술라가 한숨을 내쉬었다.「세월이란 흐르게 마련이잖니」 「그래요」 아우렐리아노가 수긍했다.「하지만 그리 빨리 흐르진 않죠」[각주:2]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전개시키며,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하는 것 같았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이라는 우르술라의 말에 아우렐리아노는 ‘그리 빨리 흐르진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아우렐리아노는 그 세월 속에서 이뤄놓아야만 하는 이상향—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마저도 감수해야 한다고 믿는 어떤 이상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재능이 야심으로, 그 야심이 광기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서, 고귀한 이상, 자신의 꿈이라고 하는, 훗날 돌이켜 보면 사랑을 짓밟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불과했던 그 망상을 통해서, 죽은 뒤에는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는 짧은 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를 우스개처럼 들려주려 하는 것 같았다. 우스개. 푸코 씨가 말하던 그 철학적 웃음이란 바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지금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미래의 나에게 남는 것은 철학적 웃음이 아닌 그저 우스개뿐일 것이다. 책을 덮고 책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며, 그의 우스개와 그의 창조적 상상력을 언젠가 다시 써먹으리라 생각하며, 나의 삶은 또다시 어떤 욕심 속으로 정처 없이 흘러가고 말 것이다. 사랑을 다른 수많은 이유들 때문에 등한시하고 놓치며, 사랑을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바하만 씨가 말했던 사랑의 표현, 즉 "현실과의 접촉의 포기, 사랑하는 삶과 같이 살 사회 질서 내에서의 생활의 포기, 사랑에 의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강제되는 자기 자신의 개성의 발전과 완성에 대한 포기, 그리고 끝에는 생 자체의 포기"[각주:3]를 하기 두려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볼 망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등을 보여주진 않을 거란 서약은 어디로 간 걸까. 그처럼 내 생각은 언제나 생각으로 그치고 말 뿐이다. 그래서 백년의 고독은 다시 시작된다. 그 시대와 인간의 모순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영원한 고독의 반복을 향하여.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사, 2006), 167~168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189쪽 [본문으로]
  3. 전혜린 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서출판, 2002), 36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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