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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모양의 유리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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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세 번째 블로그(이 블로그는 비공개 블로그다)에 접속했다. 안부게시판을 보니 한 여학생이 글이 남겨져 있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은 여전히 정신 없이 바쁜 하루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 준비 중인 그녀는 스터디에 학원에 숙제까지 해야했지만 자신은 그 바쁨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꿈을 향한 비상은 언제나 즐겁고 아름다우니. 문득 몇 년 전 대치동에 살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학원과 스터디만을 전전했었다. 스터디 팀장까지 맡고 있었기에 더욱 열심이었는지 모른다. 잠잘 시간마저 부족한 하루였지만 마음만은 행복으로 충만해 있었다. 학원 독서실 문 앞에서 줄 서 기다리던 새벽, 그땐 그 학원의 싸한 실내 냄새마저도 행복하게 느껴졌었다. 스터디를 할 때 스터디생들의 그 꿈으로 가득찬 생기 넘치는 모습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난 아직도 이때를 생각하면 즐겁고, 또 너무나 그립다.

그 학생의 글을 보니 다시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지를 생각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결책은 아직 모르겠지만,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시간만이.

옆방에서 가져온 중형 히터를 내 앞에 끌어놓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키보드는 길게 끌어 내려 내 무릎 위에 얹은 뒤 책은 한쪽에 걸쳐 놓았다. 책을 읽다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워드에 옮겨 적으며 난 생각했다. '혼자라는 조건에서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자 공[空]이 사라지고 충만함이 들어서는 게 느껴졌다. 난 다시 생각한다. '한국어 번역 소설을 읽는 건 100여 페이지를 남겨놓은 이 『벨자』가 마지막이 되겠지. 당분간은.' 난 커피를 홀짝이다 책상에 내려 놓았다. 묘한 부재의 종을 두드리며, 히터의 따뜻한 열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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