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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손과 빼앗아가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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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죽음을 최초로 목도한 순간은 어머니와 함께 간 시장에서였습니다. 어린 시절, 전 종종 어머니와 함께 시장엘 가곤 했었습니다. 제 또래 다른 아이들은 어머니와 시장에 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나 온갖 신기한 것들을 구경한다는 목적이 있던 저로써는 그게 즐겁게만 느껴지곤 했습니다. 장날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한 시장 한쪽에는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병아리와 강아지들이 놓여있곤 했습니다. 다른 한쪽에선 신기한 나물들이 팔리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선 흰 장갑을 낀 아저씨가 뻥뻥 소리를 내며 다양한 모양의 튀밥을 만들고 계시곤 했지요. 전 언제나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신기한 세상 구경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닭요리를 해주시겠다는 어머니를 따라 작은 양계장에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엔 촘촘한 닭장 안에 갇혀 있는 수십 마리의 닭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비좁아 몸을 약간만 움직이기도 힘들어보이는 그곳에서 닭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바쁘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지요. 제가 그런 닭들을 관찰하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양계장 주인에게 닭 한 마리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곧이어 계산이 끝났고, 주인 아저씨는 닭장 하나를 고르더니 닭장에 있던 작은 문 하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닭장 문이 열리자마자 닭들이 닭장 구석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닭들은 그 비좁고 작은 닭장 속에서도 어떻게든 구석으로 도망치려고 난리법석을 피웠지요. 그 바람에 닭장 문 주위에는 금세 작은 공터가 생겼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그런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별 망설임 없이 작은 문을 통해 자신의 손을 쑥 집어넣으시더니 이내 가까이에 있던 닭 한마리의 목을 잡아 쑥 꺼내오셨습니다. 그러자 그 닭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닭장 밖으로 끌려나왔어요. 닭장 문은 다시 닫혔고 그러자 곧─신기하게도─닭장 안의 닭들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 다음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어디선가 큰 칼을 하나 꺼내오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잡고 있던 닭의 가슴팍을 향해 그 칼을 꽂아넣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닭은 '끅'하는 소리를 가볍게 내더니 곧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한 생명의 죽음에 전 할 말을 잃어 멍하니 서 있었지요. 주인은 칼을 다시 뽑은 뒤 닭을 선반 위로 가지고 갔습니다. 곧, 그의 몸 옆으로 수많은 털틀이 뽑혀 날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전 그때 다시 닭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닭들은 가볍게 닭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전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보았니? 방금 그 장면을 보았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네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죽는 것을 보았니? 너희는 어떠니? 지금 슬프니? 그런데 왜 그렇게 태연해 보이니? 왜 울지 않는거니? 닭장의 문이 열렸을 때, 너희는 곧 너희들 중 하나가 끌려나가 죽을 거라는 걸 알았겠지. 그러니 그렇게 닭장 구석으로 도망쳤던거겠지. 이제 그렇게 너희 예상대로 네 동료들 중 하나가 죽었는데─어쩔꺼지? 무얼 할 수 있지? 너희는 앞으로도 그냥 그렇게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거니? 무기력하게 닭장 구석으로 도망치는 게 너희가 할 수 있는 전부인거니? 슬플 거야. 너희는 분명 슬플 거야.' 전 그들의 동그란 동공 밑으로 커다란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물의 볏이 그들의 눈 아래서 흔들거리고 있었어요. 순간적인 죽음. 잊혀진 죽음. 죽음에 대한 막연한, 그러나 조금은 진지한 생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최초의 사건이 저에게 건내준 진실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손과 그를 빼앗아 가는 손이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닭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던 그 손은 그날 아침 그 닭에게 모이를 나누어 주었던 그 손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날 아침, 그 손이 닭들에게 다가와 모이를 나누어주었을 때 그들은 즐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닭장 문이 열렸을 때 그 손은 죽음을 부르는 손으로 바뀌었고 닭들은 그 손을 보자마자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했었습니다. 행복을 주는 손과 그걸 빼앗아 가는 손은 같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삶에 관한 인식이란 그런 사각형 틀 속에 갖힌 무엇가로 점점 변해갔습니다. 생명을 주는 손과 빼앗아가는 손이 같았고, 사랑을 주는 손과 그걸 빼앗아가는 손이 같았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필연적으로 보였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그런 운명적 비극성은 조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렇게 같을 거라면, 정말 그렇게 주는 손과 빼앗아가는 손이 같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생명을, 사랑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쁨을 주고 그 대가로 슬픔을 안겨줄 거라면 처음부터 어떤 기쁨도 선택하지 않기를.' 전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살기위해 노력해왔지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영원성이었습니다. 소설이, 영화가, 드라마가 아름다워보이는 건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영원성을 약속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동화책 속에 나오는 해피엔딩은 그를 반영하고 있었지요. 백설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저는 그런 방식으로 그 둘 사이에 영원한 행복이 있을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겁니다. 왕자의 키스는 행복을 주기만 할 뿐 빼앗아 가지는 않았으니까요. 아니,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영원성이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해피 엔딩조차도 나열해 놓으면 너무나도 단순해 죽음과 같다는 것을. 결국 전 얇게 가른 삶의 박편 속에서, 위로 뛰었다가 순식간에 곤두박치는 삶의 조울증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만하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그를 놓지 말아야만 합니다. 제가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란 오직 그것 하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참 다행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답이 하나뿐이 없다는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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