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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200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1. 11. 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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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부석사 무량수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문득 떠오른 이 책에 대한 기억때문이었다. 수 년 전 이 책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책 표지의 고즈넉한 사진과 '무량수'이라는 단어에 난 순간적으로 경도되었었다. 그러니까 책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은 채 난 이 책을 일종의 경전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책 안에는 도덕적 질서와 삶과 죽음을 초월한 평온함이 깃들어 있을 것 같았다. '무량수'라는 단어를 썼으니 그런 정도의 깊이를 다루고 있겠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왠걸, 책 내용은 생각보다 수사적 표현으로 가득했고 따라서 그 글과 실제 대상(문화제)가 따로 겉논다는 느낌만 강하게 받아버렸다. 도자기, 건축물, 의복 등의 감상문에 자주 나타나는 전통적이면서도 흔한 묘사 방식, 이를테면 "날아갈듯 아름다운, 날이 매끈하게 선, 우수의 그림자가 베어있는, 남성미가 넘치는" 등등의 표현법은 내가 그 대상물을 상상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하였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도 글 자체의 표현에는 상당히 운치와 격식이 있어 '무량수'라는 단어가 지닌 철학적 기운과는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런 수 년 전의 기억이 다시 한번 책과 함께 떠오른 이유는 갑자기 부석사에 또 한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탓이고, 그로 인해 이 책의 지은이가 느꼈던 그 감흥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탓이었다. 눈이나 혀로 느낀 감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인 것처럼, 그 글에 실린 감정을 통해 눈이나 혀로 느꼈던 감각을 되살린다는 것 또한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난 묘사가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그렇게까지 표출해낸 그 서정적 아름다움을 직접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석사에 가기 전 이 책을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되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다시 보자면 이 책은 설명문으로서도---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에서---아쉬운 점이 있고 수필로서도---자신의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아쉬운 점이 있는 책이었다. 그래도 이 책은 지은이가 그 무량수전을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의 풍부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 찾을 수 있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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