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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지음, 이은경 옮김. (마다스북스, 2011)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2. 1. 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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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었다. 그 이유로 먼저 주장의 근거에 타당한 논리가 결여되어 있어 억측이 심한 것을 들 수 있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매력적인 소설에서 플로베르가 말하려는 점 하나는 관습 깨기가 실제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106쪽) 이것은 이 책 지은이가 플로베르의 소설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인데 이 해석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관습 깨기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습 깨기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예로 이런 것도 있다.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슬픔, 공포, 놀람, 또는 혐오와 같은 다른 기본적인 정서도 느끼지 못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행복이 다른 여러 정서보다 우월하고 특별한 정서가 아닌 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분명 아니다.(119쪽)" 이런 주장도 상당히 의아한데, 배고픔, 성욕, 추위나 더위와 같은, 생존과 관련된 1차적인 감정이 사랑, 행복과 같은 감정과 동일한 수준의 정서라는 주장은 기존의 상식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상식과 다른 주장을 하려면 그 근거를 들어야하는데, 단순히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을 끝내버린다.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권태 성향 테스트'라는 걸 자꾸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는 비극적인 인생을 산 어떤 이가 사전에 이 테스트를 받았다면 그런 비참한 결말을 마주하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의아스러운 면이 있다. 그 테스트는 '당신은 사고 싶은 걸 보면 바로 사는 스타일입니까?' 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에게 '당신은 절제를 잘 못하는 편입니다'라고 알려주는, 일종의 순환논증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테스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테스트는 여러 가지 권태적 요소를 지닌 사람은 권태에 빠질 확률이 높다고 결론내리는 결합의 오류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런 것까지는 이해한다 치더라도, 단순히 그 테스트를 받았다면 권태에 무기력하게 지배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은 납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지은이는 심지어 동물의 권태까지도 다룬다. 동물이 권태를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에 대해 논증하다가 동물도 권태를 느낀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물, 심지어 식물이 권태를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는 그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은이는 확실한 근거도 없는 사실에 대해 불필요한 주장을 함으로써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그는 사람과 동물에게 가해지는 여러가지 상황, 즉 감금, 반복적 작업, 변화없는 주변 환경들을 모두 권태와 연관시키는 무리를 한다. 예를 들어, 동물을 과도하게 좁은 곳에 가두어두면 '과도한 감금과 고립에 의한 권태'(125쪽)가 생겨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과도한 감금과 고립이 어째서 권태를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설명과 근거는 사라져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단점은 권태에 대한 예시가 정말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책의 절반 이상이 권태에 대한 예시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화, 소설, 실제 역사적 인물 등, 권태를 묘사할 수 있는 곳이면 계속적으로 그 모습을 인용한다. 이건 과도하게 불필요한 작업이다. 심지어 작가가 일부러 비슷한 내용을 계속 읽게 함으로써 독자가 권태에 빠지도록 의도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작가는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권태의 요소를 반복적으로 찾아내려고 한다. 그건 그의 말 그대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구토의 원인이 권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근거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단지 막연히 그렇게 얘기할 뿐이다. 자기가 얘기하려는 많은 요소에서 권태를 찾아내려는 그의 노력은 집착으로까지 느껴진다.

난 그래도 이 책의 마지막 장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권태가 이로운 감정이라고 책 전반에 걸쳐서 몇 번씩이나 이야기했는데, 그런 주장은 꽤 참신하게 느껴져서 난 그 이유를 듣고 싶었고, 그는 그 근거를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권태가 사람에게 이로운 이유가 그것이 사람에게 위험하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하여 나를 또다시 실망시켰다.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에게 이롭지 않은 상태나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분노, 화, 자살충동, 심지어 살인충동마저도 자신의 삶에 위험신호를 줌으로써 삶을 환기시키는 좋은 감정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권태를 없애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너무 뻔하고 흔한 대답을 해버린다. 정말 난 지은이가 그렇게까지 쉽고 평이한 답을 제시할 줄은 몰랐다. 어떤 병의 원인과 증상, 결과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하던 의사에게 치료 방법을 물으니 '푹 쉬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는 형국이었다. 권태로움을 벗어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에어로빅 운동을 하라--이게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답으로써 지은이가 제시한 것들의 일부였다.

자기가 습득한 몇몇 제한적인 개념들로 세상을 판단하고 그렇게 도출된 세계를 옳다고 주장하는 책---난 이 책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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