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왜 실수를 하는가에 대한 이 책은 인간이 실수를 하는 원인의 상당수를 인지적 측면에서 찾고 있다. 즉 시야가 명확히 볼 수 있는 각도의 한계성, 기억력의 한계성,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제약, 색과 향, 분위기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의 혼동, 여러가지 작업을 한번에 할 때 발생하는 주의력 분산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인간이 가진 인지능력의 한계는 꽤나 오래전부터 알려져왔던 사실이고, 그런 인지 한계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한 판단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새로울 것도 없이, 이 책은 그런 인간의 한계 때문에 우리가 실수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여러 제약때문에 잠깐 본 것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게 확실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거 일지도 몰라'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판단의 차이는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이지, 그걸 가지고 인간이 실수를 하는 원인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한 가장 큰 실수는 이 책이 우리의 실수에 대해 인문과학적인 접근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인문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이자 심리적(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것처럼 보이는)인 차원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제목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실수를 했다고 말해선 안될 것이다. 제목을 보고 책의 내용을 상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행위이며, 이 책은 그런 독자의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책 제목을 지었기 때문이다. 길을 가는데 누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한다면 발에 걸려 넘어진 후 '아 내가 실수를 했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발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독자를 기만하는 책이 줄어들 것이므로.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객곽적인 관점에서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난 이 책을 다소 빠른 속도로 읽었기 때문에 뉘앙스를 놓쳤을 수도 있고 중요 포인트를 미쳐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실수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100미터 단거리 주자에게 마라톤을 뛰라고 하면 어떤 실수가 나올지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100미터 주자에게 장거리를 뛰는 것이 우리가 실수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처럼 병적인 수준을 제외하면) 비슷한 수준의 인지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 동일한 인지능력을 가지고 다양한 판단을 한다. 이 책은 아주 일반적인 판단을 하는 대다수를 분석한 책이며, 결국 그 일반적인 사람들(우리)이 왜 실수를 하는지를 말하는 책이다. 결국 이 책도 대중적인 인간에 대해 대중적 분석을 하는 평범한 책 중의 하나이지만 이 책이 전 세계 인구의 절대수를 차지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판매전략, 교육전략, 노동전략을 펼칠 때 유용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대중을 자신들이 조종하고 이끌고 선동할 수 있으며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또는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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